• 최종편집 2024-04-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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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이곳
    [백두대간 마루금인 도로 : 사진 이완우] 남원시의 운봉읍과 주천면이 만나는 지역은 백두대간이 형성한 개성적인 지형이다. 운봉읍과 주천면이 맞닿아 있는 2km는 거의 평지 도로인데, 이 평지 도로가 지리산 자락 운봉고원의 외륜(外輪)으로 엄연한 백두대간 산맥의 마루금이다. 이 도로에서 정령치 방향을 바라보고 설 때, 이 도로의 왼쪽은 낙동강 수계이고 오른쪽은 섬진강 수계로서 이 지역은 곡중분수계(谷中分水界)를 이룬다. 백두대간 봉우리인 이곳의 수정봉 아래에 노치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백두대간 마루금이 관통하고 있다. 이 마을 앞의 운봉고원 곡중분수계 지역을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는 풍수적 관점에서 백두대간의 목 부분에 해당한다고 인식한 듯하다. 일제는 무게가 100kg 정도 되는 목돌을 6개 만들어 노치마을 앞의 평지에 깊숙이 묻었다. 일제가 이렇게하여 한반도의 백두대간에 흐르는 기맥을 누르려 했다는 이야기가 이 마을에 전해온다. 이곳 노치마을 회관 옆에는 이때 묻었던 목돌 중 5개를 파내어 보관하고 있다. 곡중분수계이며 백두대간 마루금인 2km 도로 구간의 중간 지점 가까이 낙동강 수계인 곳에 남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이 있다. 이곳은 백두대간의 생태와 자연을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다. 이곳 전시관은 한반도 지도 형상을 본떠서 지붕을 만들었다. [백두대간 노치마을 : 사진 이완우] 백두대간은 한반도에서 생명의 나무처럼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어느 마을의 산줄기라도 백두대간의 13정맥에서 다시 뻗어 나온 작은 가지로 볼 수 있다. 백두대간으로 이해하는 한반도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은 자연환경과 동식물이 어우러진 생태계의 보고이다. 백두대간은 동물들의 이동통로이자 서식처이며, 여러 강의 발원지로 생명이 시작되고 이어지는 중심지이다. [백두대간 생태교육장 : 사진 이완우] 구절초가 찬 이슬을 머금은 한로(10월 8일) 절기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을 방문하였다. 전시관에 입장하면, 백두대간에 우뚝 솟은 산봉우리에서 담아온 흙을 넣은 130개의 진공관으로 한반도의 조형물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위쪽의 40개 진공관은 비어 있는데, 북한 지역의 산봉우리들이다. 남한 지역 산맥의 사이에는 그 지역의 강물을 담은 진공관이 있다. 이 130개 진공관의 한반도 조형물은 한반도의 산봉우리 모든 흙과 강의 물이 한군데에 모이기를 염원하고 있다. 이 한반도 조형물에서 북한 지역은 백두산의 흙만 진공관에 소중하게 담겨 있다.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남북의 두 정상이 함께 한 기념식수 행사에 사용된 백두산 흙이라고 한다. 남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은 백두대간의 시작과 끝, 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전국 최초의 곳이다. [ 한반도의 산흙과 강물 진공관 지도 조형물 : 사진 이완우] 숲은 이산화탄소의 흡수와 산소의 배출로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한다.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숲이 사라지고 있어 기후위기가 심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숲과 공존하는 어울림은 절실하다. 우리가 행성 지구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자연은 더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 자연이 전하고 있는 신호와 메시지를 인식할 수 있다. 이곳 생태교육장 전시관에는 지리산 생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동식물을 모형으로 실감 나게 연출하였다. 용모도 귀엽고 털도 아름다운 족제빗과의 담비는 자기보다 몸집이 큰 동물을 사냥할 정도로 용맹한데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이다. 지리산 왕등재 습지는 참갈겨니, 돌고기와 쉬리가 물속을 헤엄치고 수달과 여우가 어슬렁거리며 생명력 넘치는 자연 생태계이다. 둥치 큰 은사시나무 아래 백두산 호랑이가 포효하려는 기상이다. 참매가 낮의 숲을 지배한다면 올빼미는 밤의 숲을 지배한다. 은사시나무 가지에는 올빼미과 여름 철새인 소쩍새가 앉아 있는데 개성 있는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숲의 나무 모형 : 사진 이완우] 이곳 전시관은 백두대간의 생태 자연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백두대간의 환경 훼손과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경보로 주제를 확대한다. 백두대간은 과도한 개발과 관광이나 등산으로 멍들고 식생이 훼손되어 동식물들이 생명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다. 대규모로 지형이 변형되면서 백두대간의 단절까지 초래하기도 하며, 등산로 따라 주변 식물이 말라 죽고 등산로의 노면 침식과 토사 유출이 발생하여 동식물의 서식지가 파괴되어 종 다양성이 감소하고 있다. 일상화된 전 세계적인 폭염과 산불, 최악의 가뭄, 대규모 홍수는 기후위기를 드러내는 현상들이다. 이제는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할 때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해결책은 숲 복원이다. 숲은 인간의 활동으로 배출되는 탄소의 3분의 2를 포획할 수 있다. 기후위기와 숲을 중심으로 하는 생태계의 파괴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숲의 나무가 폭염과 가뭄의 공격에 시달리며 내성을 잃어가고 있다. 멸종 위기에 직면한 수많은 동식물을 살려내는 것이 결국 우리 자신을 구하는 일이다. [지리산 왕등재 습지의 물고기 모형 : 사진 이완우] 이곳 전시관에서는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의 경보를 게시물로써 잘 알려주고 있다. 여우가 새의 알을 물고 가서 겨울을 위해 저장하는 모습을 보면 동물의 생존을 위한 적응 변화가 처절하기까지 하다. 빙하가 녹아내리고, 동식물의 서식지가 변화하고 있다. 꼬리표가 달린 동물과 조류가 야생에서 발견되니 생물종이 감소하고 있는 반증이다. 고온 건조한 바람 등 기상 여건이 심상치 않아 재앙적인 폭염이 반복되며 심지어 겨우내 꺼지지 않는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이곳 전시관의 포토 아크(photo ark)에는 생명의 방주를 타고 있는 동식물의 사진을 게시하고 있다. 창세기의 신화에서는 지구를 휩쓴 대홍수에 노아의 방주에 의지해 많은 생명이 멸종의 위기를 모면하였다. 현재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에서 생명의 대멸종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한 지구 자체가 또한 생명의 멸종 위기를 모면하고 보호받을 수밖에 없는 생명의 방주가 되어 있는 역설적 상황이다. [숲속의 소쩍새와 올빼미 모형 : 사진 이완우] 인간의 역사 1만 년 동안에 지구상에 있는 산림의 3분의 1일이 사라졌는데, 지난 백 년 동안에 사라진 면적이 그중 절반에 달한다고 한다. 숲이 주는 혜택은 식량과 목재의 획득, 탄소 저장 등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숲을 찾으면 산림욕으로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으며, 숲과 나무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도 있다. 이곳 생태교육장에서 산림청에서 제작한 25쪽 분량의 백두대간 생태지도를 홍보물로 받았다. 이 생태지도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설악산 향로봉까지 10개 구간별로 동물, 식물, 식생, 대표 수종, 대표 동물과 대표 식물 등의 서식 위치를 지도에 표기하고 사진을 첨부한 책자였다. 백두대간 생태교육장과 전시관에서 우리가 지구와 공존하는 노둣돌은 숲과 나무임을 확인하였다. [백두대간 은사시나무와 호랑이 모형 : 사진 이완우]
    • 이야기
    • 류오선의 지리산이야기
    2023-10-09
  • 8초 인류
    나 같은 나이에도 나 스스로 스마트폰 중독이라 여기고 있으니 이삼십대 젊은 친구들과 스마트폰의 친밀 관계는 말 할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 안에는 나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같이 애들이 멀리 사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폰을 들여다 봐야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얼굴을 볼 수 있고 손주의 움직이며 노는 모습을 옆에서 보는 듯 볼 수 있다. 누구에게 돈을 보낼 때도 돈이 들어왔나 확인 할 때도 그것을 봐야한다. 잊어 먹을까 메모도 거기에 녹음도 거기에 뭘 몰라 물어 볼 때도 거기에 한다. 노래를 들을 때도 영상을 볼 때도 그것을 찾는다. 그것이 손에서 떨어지면 금단 증상이 온다. 어딨지? 바로 옆에 놓고 가슴이 철렁! 큰일 난 듯 두리번댄다. 사진을 찍고 올리는 일이 이것을 통해야 쉬우니 일단 이것으로 사진을 올리고 컴터에서 글을 쓰던 뭘하던 한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그 안에 있고 내가 모르는 모든 것을 그것은 알고 있다. 외울 필요가 없으니 그것을 보고 있다 머리를 들면 바로 까먹는다. 지금 찾고 조금있다 찾고 내일 또 찾는다. 한 집에 살면서도 때론 문자가 더 편하다. 사진까지 같이 보내며 요런거라고 똑 부러지게 부탁한다. 내가 아는 사람은 물론 모르는 사람의 일상까지 읽으며 나 지금 뭐하지? 하며 스스로 끔찍스러워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다시는 너와 가까이 하지 않겠다고! 그러나 마치 고기가 어항 밖으로 튀어나와 발버둥치듯 손을 덜덜 떨며 그것을 찾는다. 증상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다 비슷한 병을 앓고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300쪽 가까이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고 실험을 통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다. 근데 왜 뭐하러 읽고 난리야. 뭐 좋은 소리라도 있을까해서? 그 병이 확실한가 오진은 아닐까 확인해 보려고? 암튼 나는 뭘 몰라서 못하기 보다 삼일을 넘기지 못해서 못한다. 이 중독 증상이 병이라면 고쳐야겠지만 미리 단언한다. 고치지 못할 거라고 아니 안 고칠거라고! 그러나 정말 꼭 필요할 때만 쓰고 싶다고! 꼭 필요할 때만 쓰는거 아니였나? 그럴때가 많을 뿐이쥥 헤헤. 20분이 지나면 이미 우리는 공부한 것의 60퍼센트만을 기억할 수 있고, 1시간이 지나면 절반이 채 안 되며, 하루가 지나면 단지 3분의 1만 기억할 수 있다. 한달이 지나면 뇌 속에는 정보의 15페센트 밖에 남지 않는다. (헤르만 에빙하우스) p15 오늘날 지구상의 이동 전화 가입자 수는 79억명이다.(2019). 전 셰계 인구는 76억 명이니 사람보다 사용중인 심카드가 더 많은 셈이다. 매년 아이들보다 더 많은 심 카드가 탄생한다는 주장은 내게 적지 않은 우려를 불러일으킨다.((생략) 자랑할 만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탈리아는 한국(삼성의 본국)과 홍콩에 이어 인구 대비 모바일 기기 수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나라다. (생략) 지금 이 순간, 지구상에 집에 화장실이 있는 사람보다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유엔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24억 명의 사람들만 화장실을 소유하고 있으며, 약 10억 명의 사람들은 야외에서 용변을 해결한다. p41 오늘날 평균적인 사용자가 아이푠을 잠금 해제하고 사용하는 횟수가 하루에 약 80회, 1년에 거의 3만회(지금은 이미 그 이상일 것이다)에 이른다는 애플의 데이터나 하루에 스마트폰을 만지는 횟수만 해도 2,617회에 이른다는 또 다른 연구의 결과는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웹 전문가 니르 이얄은 <훅>에서 스마트폰 소유자의 79퍼센트가 매일 아침, 잠에서 깬 후 15분 이내에 기기를 확인한다는 자료를 내놓았는데, 내가 보기에 이는 사실과 다른 것 같다. 실제로는 그보다 더 짧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 는 잠이 완전히 깨기도 전에 숨 쉬는 것처럼 자동적으로 침대 옆 협탁에 놓아둔 스마트폰을 집어들 뿐만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문자를 찍고, 눈을 제대로 뜨지 않고도 페이스북 앱을 열 수 있다. 게다가 전화나 메시지가 온 것이 없는데도 스마트폰이 주머니 속에서 진동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것은 환각의 한 형태로 10명 중 9명에게 일어나며 심지어 '팬텀진동증후군'이라는 학술명까지 가지고 있다. 팔다리를 잃은 사람이 뇌의 잘못된 재조정으로 인해 여전히 팔다리가 있다고 느끼는 현상,마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지의 말단 신경으로부터 계속해서 자극과 신호를 받는 것처럼 느끼는 현상인 '환각지phantom limb'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랍다. 이것은 스마트폰이 어느 정도로 우리의 일부가 되어버렸는지를 보여준다. (생략) "스마트폰 진동처럼 작고 빈번한 세포의 경련인 진동들은 감지되고 서로 교루합니다. 이를 설명하는 데는 두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술이 우리의 두뇌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단순히 우리가 불안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메일과 메시지에 답장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우리를 초조하고 과민한 상태로 만든다는 것이죠."p46 8초는 오늘날 우리가 평소에 관심을 기울이는 평균 시간이다. 기사를 읽을 때, 음악을 들을 때, 영화를 볼 때,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집중력을 잃는다. 8초! 금붕어보다 짧은 시간이다. 단 8초의 집중력으로 인해 우리는 오해와 소통 불가능, 고독 그리고 침묵의 형을 선고받았다.p66 역사상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산만함을 '산만함'이라 부르기를 그만두었다. 이 말의 근저에 깔려 있던 모든 부정적 의미와 함께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멀티태스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컴푸터의 기능에서 차용한 용어다. (생략) 안타깝게도 실제로 컴퓨터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다. (생략) " 완전히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몸짓이 아닌 이상, 인간은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하는 것은 전환입니다. 굉장히 빠르게 앞뒤로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매 순간 우리가 주의를 다시 집중시킨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하루 종일 이 업무 전환이 쌓이면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는 집중력과 두뇌에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집중력이 낮아지는 것을 디대로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스마트폰은 그 물리적 존재만으로도 인지 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사용하지 않고 주변에 두기만 해도 우리의 주의력은 분산된다.p91 인간의 기능을 기계가 대신할 때마다 우리의 삶에서 그리고 뇌에서 어떤 능력이 제거되는 것이다.p132 화면의 LED가 청색광을 방출하기 때문입니다. 뇌는 이것을 날이 밝은 하늘의 푸른빛으로 알고 잠이 깰 때를 알리는 신호라고 해석하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디지털 기기가 뇌의 기억 능력에 미치는 첫 번째 직접적인 영향입니다."p154 2017년에 노벨 의학상은 일주기 리듬(대략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하는)을 제어하는 분자 매커니즘을 발견한 공로로 세 명의 연구자에게 수여되었다. 태양광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에서 방출되는 청색광과 같은 단파장에 노출되면 우리의 신체는 모든 관점에서 '활성화'되어 반응한다. 반대로 양초의 빛과 같은 붉은 빛의 긴 파장에 노출되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잠이 들려는 성향이 있다. 24시간 주기의 리듬이 깨지면 당뇨병이나 비만, 우울증, 심부전, 천식과 같은 심각한 질병의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특히 어두운 방에서 잠들기 전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행동이다. p155 죽었다 다시 태어나는 것 정도의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 한, '좋아요'와 '엄지 척' 사회는 계속될 것이다. 웹의 거인들에게 스스로를 개혁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빙산에서 타이타닉 호를 구하라고 요구하느느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p193 가끔은 무언가를 모른다는 것, 의심에 빠진다는 것이 참으로 위안이 되었는데,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단어들의 올바른 문자열을 입력하기만 하면 엄청난 양의 온라인 정보들 사이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p217 "독서는 정신의 학교입니다. 읽기 회로를 개발하면 점점 회로가 성장합니다. 깊이 읽을수록 생리학적으로 더 정교해집니다. 깊이 있는 독서는 수신하는 정보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고 있는 것과 생각하고 있는 것을 연결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구축하기 때문이죠. 두뇌는 이러한 네트워크에 의해 말 그대로 장악되며, 신경학적 관점에서 이 모든 네트워크들이 모여 분석 능력을 구축합니다." 즉 깊이 있는 방식으로 더 많이 읽을스록 '정교한' 과정을 더 많이 강화하고, 읽은 내용이 기억 속에 더 많이 굳게 자리 잡을수록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매이렁 울푸가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골똘히 생각하기think hard'였다.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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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5-24
  •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제목이 코믹하다. 부제는 '정치적 동물의 길'이다. ”사실 정치에 관심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일단 뉴스보면 기분 나빠지고 욕 나오니 싫다. 모든 정치적인 것에서 멀어지고 싶다. 사실 별 관심도 없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모든게 정치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사는게 정친데 정치가 싫다? 이 무슨 모순이고 비극인가? 그렇다면 정치가 재밌고 좋아지려면 어찌해야 하나? 뭐 내가 결론내는 건 언어도단이긴 하지만 최소한 내가 불행하지 않으려면 정치가 재밌어야 하겠지? 그런 일이 있을랑가는 몰겄지만 이런 재미있는 정치에세이는 어떤가! 이 책은 전문 정치학 책은 아니고 에세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1부 정치란 무엇인가? 로 부터 시작해 여러가지 정치 얘기를 한다. 쉽고도 재밌다. 또 영화 얘기도 많고 그림 얘기도 많다. 알고보면 이 모두가 정치라는 얘기다. 결국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고 정치 없이 인간은 없다. 뭐 그런 이야기? 당신을 위로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위로하는 좋은 말들처럼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의 인생 역시 어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보다 훨씬 더 뒤처져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좋은 말들을 찾아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 P9 정치가 어디 있냐고?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이 세상에 태어나 있고, 태어난 바에야 올바르게 살고 싶고, 이것저것 따져보고 노력해보지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려니 합의가 필요하고, 합의하려니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합의했는데도 합의는 지켜지지 않고, 합의 이행을 위해 규제가 필요하고, 규제를 실천하려니 권력이 필요하고, 권력 남용을 막으려니 자유가 필요하고, 자유를 보장하려니 재산이 필요하고, 재산을 마련하니 빈부격차가 생기고, 빈부격차를 없애자니 자원이 필요하고, 개혁을 감행하자니 설득이 필요하고, 설득하자니 토론이 필요하고, 토론하자니 논리가 필요하고, 납득시키려니 수사학이 필요하고, 논리와 수사학을 익히려니 학교가 필요하고, 학교를 유지하려니 사람을 고용해야 하고, 일터의 사람은 노동을 해야 하고, 노동하다 죽지 않으려면 인간다운 환경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자연재해가 일어나거나 전염병이 돌거나 외국이 침략할 수도 있다. 공동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많고 쉬운 일은 없다. 이 모든 것을 다 말하기가 너무 기니까, 싸잡아 간단히 정치라고 부른다. 정치는 서울에도 지방에도 국내에도 국외에도 거리에도 집 안에도 당신의 가느다란 모세혈관에도 있다. 체지방처럼 어디에나 있다, 정치라는 것은. P23-24 정치 공동체는 자연의 산물이다. 그리고 인간은 본성상 정치적 동물이다. 우연이 아니라 본성상 정치 공동체가 없어도 되는 존재는 인간 이상이거나 인간 이하다. -아리슽텔레스 "정치학" 중 p25 폴리스 시민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 아테네 사람들은 공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초탈한 사람이라고 존경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한다." p29 모든 권력을 싫어한다는 말은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말이며,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것은 삶을 혐오한다는 것이다. 권력은 권력만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여러 일을 가능하게 한다. 사람은 종종 목표를 지향하고, 그 목표는 권력의 향사를 통해 달성된다. 아무 것도 도모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까. 체속을 초월하겨고 드는 선사도 해털을 도모한다. 마음의 고요를 얻기 위해서도 마음의 파도를 잠재우는 어떤 나직한 힘이 필요하다. 정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겠다면 어딘가 조용히 숨어서 자신의 멸종 소식을 기다려라.p53 근대 정치 이론의 초석을 놓은 토머스 홉스는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그처럼 한갓 사적 인간이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낱낱이 흩어져 있던 인간들이 어떻게 단일한 의지를 가진 권력체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일까? 그냥? 심심해서? 그렇지 않다. 그들은 죽지 못해서 변신하는 것이다. 변신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으므로. "지속되는 두려움과 난폭한 죽음의 위협"으로 인해 인생이 고독하고, 열악하고, 고약하고ㅡ 잔인하고, 짧아질까 봐" 변신하는 것이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정더로 괴롭기 때문에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 변신 덕분에 인간은 비로소 삶을 견딜 수 있게 된다. 투표는 인간이 정치적 인간으로 변신했던 그 위대한 상상을 되살리는 축제다.p109 다민족 국가를 다스리는 일의 어려움은 피터 반 더 보트의 1578년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온갖 짐승들의 머리가 달려 있는 거대 괴물을 정치 및 종교 지도자들이 당혹스럽게 바라보고 잇다. 이 괴물은 다민족 제국의 여정을 시작하던 16세기 후반의 (오늘날)네덜란드를 상징한다. 그러나 다민족 국가가 반드시 통치의 어려움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잘만 소화하면 그것은 활력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유럽 각국이 가톨릭이냐 프로테스탄트냐의 갈림길에서 탄압과 전쟁을 일삼고 있을 때, 네덜란드는 적극적으로 관용 정책을 택했다. 그에 따라 칼빈주의자뿐 아니라 가톨릭 루터교, 유대교, 재세레파 신자 등 타국에서라면 이교도로 낙인찍혀 핍박을 받았을 인재들이 네델란드에 몰려와 살게 되었다. 17세기 초 암스테르담 인구의 40퍼센트를 이민자가 차지할 정도였다. 다양해진 인구 구성을 장애물이 아니라 활력으로 승화시켰을 때, 네덜라드는 본격적인 번영을 구가하게 된다. 오늘날 많은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기 나라가 향유하고 표방해온 다양성과 자유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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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5-18
  • 지리산 봄(春/見), 루이네
    지리산 봄(春/見), 루이네 강회진(시인, 독립연구자) 마음이 아픈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어 앞으로 운이 좋아 80살 까지 산다고 쳤을 때 내게 남은 생은 살아온 날 보다 적다. 마음이 아픈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 무엇을 견디는지도 모른 채 인생이 지나고 있다. 나의 욕심으로 때론 너무 왔거나 지나갔거나 눈치 채지 못한 관계에 지치고 하지 않아도 될 일들까지 하느라 몸과 마음이 늘 고단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나 진짜 나만을 위한 시간,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드디어 나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하나. 오랫동안 지리산과 섬진강을 그리워했기에 구례, 하동을 꿈꾸었다. 언젠가 초여름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보았던 산내의 다랭이논 일렁이는 초록 물결과 손에 잡힐 것 같던 흰 구름, 고즈넉한 실상사의 저녁 예불 모시는 풍경들이 자꾸만 나를 불렀다. 마음을 정하고 나니 모든 것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집을 구하기 어렵다는 산내에 빈 집이 나왔고 내놓은 아파트는 금방 입주자가 나타났다. 마치 오래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일처럼. 2. 세 가지면 충분하다 사람들은 내게 왜 그 먼 곳으로 가느냐 물었다. 대체 어디에서부터 먼 곳이라는 말일까? 나에게는 가장 가까운 곳이 바로 이곳이라 말하지 못했다. 마당에서 듣는 하루 두 번 실상사 범종 소리와 수달이 살고 있다는 람천의 우렁찬 물소리,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천왕봉. 이곳으로 이사를 위한 이유로 이 세 가지면 충분했다. 게다가 이곳은 내게 완벽하게 낯선 곳. 이사를 하는 날 고속도로에 눈발이 날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운전기사는 “이사하는 날 눈이 오면 부자된다 안하요.”라며 애써 웃음을 보였다. 지리산 IC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쿵쿵 뛰었다. 저 멀리 펼쳐진 지리산 자락이, 마을이 온통 눈으로 환하게 빛났다. 지리산에 곁들어 사는 일은 지리산이 허락해야 한다던데 드디어 나도 지리산의 선택을 받았구나. 다정한 지인들은 문패를 만들어 보내주었고 마당에 심을 꽃나무와 다양한 꽃씨를 보내주거나 어여쁜 커튼을 보내 새로운 출발을 기꺼이 응원해 주었다. 이사 후 두 번의 큰 눈이 내렸다. 저 멀리 눈에 덮인 천왕봉은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실상사 저녁 범종 소리를 들으며 구들방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가끔 불씨가 아까워 고구마를 구워 강아지와 나눠먹었다. 그렇게 산내의 첫 겨울이 고요히 흘러갔다. 3. 산내는 산내말로 살래 맘씨 좋은 이웃이 밭 귀퉁이를 무상으로 빌려주셨다. 또 다른 이웃은 슬며시 거름을 부려놓고 가셨다. 감자를 심고 두둑 가에는 옥수수도 심어야지. 밭을 일궈 고랑 네 개를 만들고 거름을 뿌렸다. 다음날 맞춤비가 내렸다. 나른한 햇살을 받으며 꽃씨를 담구고 씨감자 눈을 쪼개다보니 어느새 담장에 노란 개나리가 막 피어나는 춘분이 되었다. 밤마다 멀리 무논에서 개구리들이 정겹게 울어댔다. 어느 밤, 마당에 나가 올려다본 하늘, 선명하게 반짝이던 북두칠성이 말했다. 그래, 잘 찾아왔어. 너의 길. 이른 아침 단풍나무에 새가 날아와 한참을 앉았다 날아가는 흔하디흔한 그 풍경이 좋았다. 새들을 위한 모이를 뿌리고 수돗가 물을 갈아준다. 햇살이 길게 들어오는 이른 아침, 멀리 천왕봉을 게으르게 앉아 바라보는 그 시간을 놓칠까봐 아침 일찍 일어난다. 지리산에 와 매일 매일이 행복한 검은 개 루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이웃 어르신들이 묻는다. 어디사요? 놀러왔는가베? 아니요, 저 살래 살아요. 저 멀리 앞 산 노란 산수유 지면 대문 옆 감나무에도 반짝이는 새 잎 무성할 것이다. 마당에 정성껏 심은 모란이 피고 지는 깊은 봄이 흘러 옥수수를 따고 감자를 캐면 좋은 사람들 모아 잔치를 해야지. 지리산의 첫 봄, 살래의 첫 봄, 나의 첫 봄이 설렌다. -달궁수달래 / 김인호
    • 이야기
    • 여기저기 민들레
    2023-04-09
  • 다섯번째 산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전 세계 170개국 이상 83개 언어로 번역되어 3억 2천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 우리 시대 가장 사랑받는 작가. 1947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저널리스트, 록스타, 극작가, 세계적인 음반회사의 중역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다, 1986년 돌연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난다. 이때의 경험은 코엘료의 삶에 커다란 전환점이 된다. 그는 이 순례에 감화되어 첫 작품 『순례자』를 썼고, 이듬해 자아의 연금술을 신비롭게 그려낸 『연금술사』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출판사) 세상 모든 사람은 피하라 수 없는 일의 영향을 받는다. 어떤 이들은 극복했고 어떤 이들은 포기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비극의 날개가 우리 인생을 스쳐지나가는 경험을 한 적 있다. 이유가 뭘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엘리야를 따라 아크바르의 시간 속으로 떠났다. 파울로 코엘료p12 "인간은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천사가 대답했다. "결정을 내리는 힘이 바로 너의 능력이다."p192 "그보다 더 어려운 건 자신의 길을 분명히 정하는 것이다. 선택을 하지 않는 자는 아직 숨을 쉬고 길을 걷고 있다 하더라도 신의 눈에는 죽은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누구도 죽지 않는다. 영원함은 모든 영혼에게 열려 있고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나갈 것이다. 태양 아래 있는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p193 하느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과 정면으로 맞서고 당신의 질문에 대답하게 하신다. "왜 너는 그토록 짧고 고통으로 가득한 존재에 그토록 매달리느나? 너의 싸움의 의미는 무엇이냐?"p279 아이들은 항상 어른에게 세 가지를 가르쳐주죠. 별 이유 없이도 행복해하기, 무언가에 항상 몰두하기,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온 힘으로 매달리기. 제가 아크바르로 돌아온 것도 저 아이 때문입니다. p276 "주님의 말씀은 네 주변의 온 세상에 쓰여 있단다. 네 삶에 일어나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보면 너는 하루의 순간순간 주님께서 당신의 말씀과 뜻을 숨겨놓으신 곳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주님이 시키시는 일을 해내도록 노력하렴. 그것이 네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란다."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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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3-08
  • 가여워 하는 마음
    가여워하는 마음 박두규/시인 어김없이 새날이 오듯 새해도 온다. 그리고 사람들은 바쁜 연말이나 연시의 와중에도 한 번쯤은 가는 세월이나 오는 세월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거나 다짐하게 된다. 나는 인생 간판에 시인 딱지를 붙이고 살다 보니 연말연시가 되면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가끔 되짚어보곤 하는 것인데 그때마다 박수근(화가)이 했다는 말이 떠오르곤 한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기억에도 없는데 느닷없이 날아온 돌멩이처럼 나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 수시로 울림을 준다. 예술이 아름다움의 영역이라면 그 아름다움은 선함과 진실함의 바탕에서 이루어진다는 어떤 믿음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의 말처럼 정말 평범한 일상생활 속의 착함과 진정함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그냥 스치고 지나갈 수도 있는 이 말이 나에게 강하게 올 수 있었던 건 아마 당시 이런저런 경전들을 읽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경전의 바탕이 선함과 진실함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때 그것들을 읽어내며 스스로의 단어로 정리해낸 말은 ‘가여워하는 마음’이었다. 그 즈음에 나온 시집의 제목을 ‘가여운 나를 위로하다’라고 붙인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이런저런 부족한 짓, 말도 안 되는 짓, 터무니없는 짓들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은 윤가와 그의 사람들에게는 이 ‘가여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이긴 자가 진 자에 대해 그리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 또는 민초들에 대해 ‘가여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됨의 근본이 없는 것이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연민도 없이 살아가는 것들이 무슨 정치며 예술이며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마음을 학문이나 사상에 앞서 삶 속에서 잘 보여준 옛사람으로 퇴계 이황 선생이 있다. 요즘 자본주의 기후 위기에 연계된 이런저런 책들을 보게 되었는데 21세기에 들어 사상적 출구를 모색하는 세계의 석학들에게 주목받는 사람 중에 퇴계 선생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퇴계를 생각하면 그의 사상이나 학문보다는 그가 살아낸 구체적인 일상 삶과 그를 통해 보여준 ‘가여워하는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그는 스물한 살에 결혼하고 아내 김해 허씨와 함께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지만, 아내가 결혼 6년 만에 병사한다. 그리고 3년 상을 치른 후 재혼하는데 맞아들인 권씨 부인은 정신질환이 있는 병약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퇴계가 마음속으로 존경했던 권주(연산군 때 갑자사화로 사약)의 아들 권질의 딸이었다. 권질은 조광조 숙청의 기묘사화 때 예안으로 귀양 와 있었는데 퇴계가 이따금 찾아가 문안 인사를 하며 지내는 사이였다. 그런데 권질은 병을 얻어 죽으며 여러모로 부족한 딸을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 퇴계에게 딸을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퇴계는 마음속으로 존경하던 분의 집안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몰락하는데 자손들마저 불행해지는 것이 가슴 아파서 그 딸을 맞아들여 재혼하게 된다. 하지만 퇴계 선생의 진정 훌륭한 점은 결혼 후 그 정신적 질환이 있는 부인에게 ‘손님처럼 공경하는 법도’를 실천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퇴계 선생이 공부하고 펼친 지식과 사상이 현실 속에 살아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또 그의 ‘가여워하는 마음’의 정도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알다시피 퇴계는 인간의 근본 마음 네 가지 중 앞세운 것이 측은지심(仁)이며 바로 ‘가여워하는 마음’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늘 4단四端의 마음을 중심에 두고 7정七情의 마음을 경계하는 것이 당시 선비들의 수행이고 공부였는데 선생은 삶 속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결혼생활도 16년 만에 권씨 부인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퇴계의 ‘손님처럼 공경하는 법도’ 또한 그렇게 끝났는데 퇴계는 훗날 그 시절을 ‘결혼생활 16년 동안 더러는 마음이 뒤틀리고 생각이 산란하여 고뇌를 견디기 어려운 적이 없지 않았다’라고 술회한다. 이러한 고백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비록 퇴계가 그 시절을 자신의 덕을 쌓는 수양의 화두로 삼아 모범을 보였다고는 하나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나를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퇴계의 ‘가여워하는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또 하나의 일화는 그의 며느리 이야기다. 둘째 아들 채(寀)는 정혼한 상태였는데 그 아들이 결혼을 앞두고 급사하게 된다. 그래서 아들이 죽었기 때문에 예식도 못 올린 며느리를 맞이해야만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퇴계는 당시 삼종지의三從之義의 엄격한 규율을 깨뜨리고 처녀의 몸으로 며느리가 된 여인을 친정으로 돌려보내 재가하게 한다. 퇴계 선생의 삶의 바탕에 있던 ‘가여워하는 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퇴계는 엄격한 유가의 선비였으나 깊은 인간애에 바탕을 둔 스스로의 삶을 꾸려내었으며 세상의 법도 이전의 ‘불법不法의 예’를 보인 진정한 유가의 스승이었다. 그리고 퇴계는 첫째 부인이 죽은 후 두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관례에 따라 첩을 들였는데 그 첩도 선생보다 먼저 죽게 된다. 첩에게서 낳은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 또한 자신의 호적에 올렸고 차후에 그 아들의 후손들이 적서의 차별을 받지 않도록 족보에 적서의 구별을 두지 않게 하였다. 또 퇴계 선생은 이런저런 굴곡의 가정사를 다 넘기고 홀아비 생활을 하는 중에 단양군수로 있을 때는 단종 복위에 참여했던 사대부의 후손으로 어린 나이에 관기가 된 기생 두향을 소실로 맞아 외로움을 달래고 남녀의 사랑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서자와 관기라는 당시 천한 신분의 사람에게도 시대의 법도를 넘어 사람의 근본에 있는 ‘가여워하는 마음’으로 차별 없이 대하였다. 나는 퇴계 선생의 아픈 가정사를 보면서 평범한 일상생활 속의 착함과 진정함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박수근이 말한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그 말의 깊이를 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황이라는 사람은 위대한 학자요 사상가이기 전에 ‘가여워하는 마음’이라는 존재의 근본을 깨달은 사람이고 그렇게 자신을 살아낸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 사회는 이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는가. 국정을 운영한 새 정부의 2022년을 보면서, 제 이익과 안위만을 생각하는 권력을 보면서, 그들의 치졸한 양아치 정치를 보면서, 윤가와 그 권력의 발뒤꿈치를 쪼아 먹고 사는 닥터피쉬들을 보면서, 그 언론과 정치권과 검찰과 윤의 사람들을 보면서, 언감생심焉敢生心 ‘가여워하는 마음’을 꿈꿀 수는 있을 것인가 하는 절망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나라를 맡긴 것은 국민이니 한편으론 할 말도 없다. 이는 모두 자본주의, 자유주의라는 왜곡된 이데올로기 안에서 돈만 있으면 되고 나만 살면 된다는 그릇된 가치관의 정서가 우리 사회 안에서 당위적 정당성을 얻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가치관의 변화 없이는 우리 사회의 ‘가여워하는 마음’은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퇴계 선생처럼 개개인의 진정성으로 실천하는 정도를 넘어 지난날 촛불처럼 온 국민이 지극정성으로 ‘가여워하는 마음’을 기원하는 계묘년이 되기를 바란다. <끝>
    • 이야기
    • 여기저기 민들레
    2023-01-26

실시간 이야기 기사

  • 숨결이 바람 될 때
    죽어가는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실 누구나 죽어가고 있다. 다만 그 정확한 시점을 모를 뿐이다. 신경외과 의사인 폴 칼라티니의 죽음이 나의 가슴을 파고드는 이유는 그가 죽는 그 순간까지 그가 하고자 하는 일에 끊임없이 매진했다는 것이다. 자기도 통증이 심한 환자이면서 다른 환자의 수술을 집도하고 암의 심한 고통 속에서 책을 집필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너무나 젊은 36살의 나이에 생을 마쳤다는 것이다. 의사가 되려고 하는 이들은 꼭 읽어야 할 필독서가 아닐까? 지금은 의사 불신의 시대이며 생명이 소중하게 다뤄지지 않는 경향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인문학을 전공했고 인간의 생명을 더 깊이 알기 위해 의사가 되었다. 인문학과 과학은 그가 했던 것같이 공존하며 같이 가야 하는 인간의 길인 것이다. 산다는 것은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과 모든 생명에 대한 탐구일 것이다. 다만 어느 위치에서 어떻게 그것을 바라보는냐의 차이일 것이다. 폴 칼라니티는 환자를 객관적 입장에서 바라보며 자기가 환자가 되어 주관적인 삶을 살았다. 그 모든 삶의 치열함에 눈물이 난다. 마치 내 눈 앞에서 내가 잘 아는 한 사람의 임종을 보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나오는 흐느낌을 멈출 수 없었다. 인간이 일생동안 살아야 하는 총량이 누구나 다 똑같다면 그는 너무 짧은 시간에 그것을 다 써버린 것은 아닐까? 이미 이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의 모습이 담긴 가족 사진이 마치 잘 아는 사람의 사진처럼 느껴진다. 그는 책의 집필을 완성하지 못했고 그의 아내인 내과의사 루시가 책의 에필로그를 썼다. 마치 한사람이 쓴것 같은 느낌이다. 가족은 누구에게나 소중하지만 이 한장의 사진이 생전 한번 만나보지도 못한 나에게도 소중하게 느껴져 여기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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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8-04
  • [9월2일] 인드라망 사회연대쉼터 10주년 후원의 날
    인드라망 사회연대쉼터 10주년 후원의 날 국가, 사회폭력 및 모든 차별에 맞선 이들의 위한 무료쉼터 2023년 9월 2일 (토) 14시 전북 남원 귀정사 인드라망 사회연대쉼터는 민주주의 투쟁의 현장, 저항의 현장, 새로운 모색과 실천의 현장 등에서 국가폭력, 사회폭력에 맞서다 지치거나, 아프거나, 쉼이 필요한 분들을 위한 연대의 공간입니다. 또한, 쉼이 필요한 우리사회의 모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무료쉼터입니다. 2013년 9월 고문으로 (고)백기완, 신학철, 문정현, 이남곡, 도법스님 등을 모시고 150여명의 쉼터를 지지하고 후원하는 분들과 함께 기존 공간 1채와 쉼터 개소식에 맞춰 새로이 지은 3채로 총 4채의 1인1실의 쉼터를 마련하면서 개소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후원회원들 후원으로 증축하여 현재 7채의 독립적인 쉼터의 공간이 마련되었습니다. 현재는 7채의 독립적인 공간과 귀정사의 요사채 4채를 사용하여, 총 11채의 공간으로 장,단기 쉼터 이용자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쉼터에 장기간 머무는 기간은 최대 3개월로 신청을 받고 있으며, 필요시 쉼터와 상의하여 3개월씩 연장하여 이용하고 있습니다. 단기간 쉼터를 이용하는 분들은 1박부터 자유로이 본인의 상황과 조건에 맞게 쉼터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쉼터는 그냥 쉬는 곳이 아니라 자신의 고민을 돌아보고, 자신의 건강과 마음을 회복하는 쉼의 시간을 이용하는 곳입니다. 쉼의 사회적 확장을 위해 숲치유 예술제를 비롯하여 외부와의 소통과 쉼터를 알리는 작업도 조금씩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진행해온 10년의 쉼터는 많은 것이 부족한 공간이며, 장애활동가들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공간이며, 많은 면에서 한계를 가진 공간입니다. 9월2일(토) 10주년 후원의 날은, 쉼터의 한계를 조금이나 극복하고 좀 더 나은 쉼터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다시 한번 시작하는 날입니다. 정태춘님의 공연과 지리산과 전국에서 활동하시는 예술인들의 공연, 그리고 다양한 전시와 체험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쉼터와 10주년 후원의 날에 관심과 애정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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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8-04
  • 세상에 단 하나 뿐인 빨강머리 앤 인문학
    언젠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엄마 없는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엄마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아봤고, 엄마 노릇을 해본 입장에서 든 생각이다. 엄마의 사랑은 '무조건'이다. 조건이 없을 뿐더러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준다. 아버지의 사랑도 그러할 것이지만, 아버지가 되어보지 못해 확실히 말할 수 없다. 만약,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남자로 태어나 남편과 아버지가 되어보고 싶다. 애인도. 여자에게 엄청 잘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몇년동안 소년원에 일주일에 한번씩 봉사를 간 적이 있다. 그냥가서 애들하고 놀며 대화하는 것이다. 그곳에 온 아이들의 다수가 한쪽 부모만 있거나 아버지만 있다. 엄마만 있는 애들은 그곳에 오지 않고, 아버지만 있는 애들이 더 많이 온다는 야그다. 아버지는 돈벌고 애들 돌보는 것 외에 할 일이 많다. 엄마는 돈벌고 애들 돌보는 것만 한다. 이런 경우를 많이 봤기에 내가 스스로 결론 지은 것이지 오해는 없기를 바란다. 우리 엄마도 같은 경우였다. 암튼 고아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다는 나의 결론의 이유다. 앤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아이라 세상 온갖 불쌍한 모습을 해야 하는데 그녀는 그렇지 않다. 당당하고 활발하고 명량하다. 여기서 나의 결론 또 한가지. 성격은 타고 나는 것이다. 제 아무리 최고의 환경과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랐어도 몸 속에 뿌리박혀 있는 우울은 소리없이 자라 어느날 거대한 나무가 되어있기도 하다. 빨강머리 앤에게도 왜 우울과 슬픔의 뿌리가 없을까마는 어쨌든 우리가 아는 앤은 그런 것쯤 싹이 날때 댕강 잘라버리는 성격을 가진 애다. 빨강머리앤이 책 뿐아니라 넷플릭스에서 시리즈로 드라마로도 상연됐었다고 한다. 그런데 시리즈 별로 책하고는 좀 다른 부분도 있는 모양이다. 볼까 말까... 어쨌든 저자는 박홍규는 책 속의 앤과 드라마의 앤을 분석하며 자기 딸 미령에게 편지를 쓴다. 박홍규는 딸 미령에게 대화하며 딸과 함께 앤을 분석하며 하고 싶은 말을 한다. 그의 딸 미령은 지금 출가해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다. 부모는 장성한 자식을 보면서도 그의 어렷을 적 모습을 같이 기억한다. 자식이 그의 자식을 키우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 너는 그 나이 때 이랬는데...라고. 내가 그렇다는 야그. 그래서 80이 되어도 자식은 아직 어리다. 엊그제 가수 시네이드 오커너가 저세상 사람이 됐다는 뉴스를 들었다. 아직 젊은 그녀가 왜? 뉴스를 듣고 처음 드는 생각이다. 정확히는 모르나 최근 17세 아들을 잃었고 정신 치료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자식의 상실만큼 큰 상실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 박홍규가 딸 미령에게 부탁하는 말의 일부로 독후감을 대신한다. " 이 새벽에 문득 앤 그림을 그리다가 네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떠올라 한 자 적어본다. 네게 뭘 하지 마라, 고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평생 노력했지만 오늘만큼은 참고 들어주었으면 좋겠구나. 무엇보다 아이를 앤처럼 자유롭게 자라게 해주렴.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모범생으로 키우지 마라. 부모 찬스니 스펙 조작이니 하는 더러운 짓은 제발 상상도 하지 마. 가난한 집 아이라고 함께 놀지 못하게 하는 비인간적인 부모가 되지 말아라. 마릴라나 매슈처럼 딸도 아닌, 그냥 가족으로 입양한 아이인데도 지극한 사람으로 키우는 그런 어른이 되어주렴. 그들이 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당당하게 자라도록 도와준 것처럼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내가 기억하는 너는 나의 앤이지. 앤과 비교할 것도 없지. 모든 부모에게 그렇듯이 세상에 둘도 없는 딸이고 아들이지. 그 유일성을 지켜주는 게 바로 부모란다. 세상이 요구하는 틀에 집어넣어 인형처럼 만들지 마라. 앤이 인형처럼 변하는 모습은 섬찟하잖아? 그래서 나는 [빨강머리 앤]만 좋아하고 그 뒷이야기는 싫어했어. 너는 운이 좋은 아내이자 엄마이고 딸이란다. 그러나 앤처럼 언제나 네 유일성을 잊지말고 살아가길 바라. 이렇게 긴 편지를 쓴 이유도 바로 그거야. 나도 편지를 쓰는 동안 '이제 여생을 나의 유일성을 찾는 시간으로 살아볼까' 생각해보았단다. 그래, 우리 모두 동심으로 돌아가면 세상은 좀 더 좋아지겠지? 사랑한다. 딸아. 우리, 앤처럼 살자. 자기만의 삶을 살자. 기성의 속물이 되지 말자. 나를 세우되 남을 돕자. 야만에 맞서 바르게 살자. 그래서 다시 '앤'처럼 살아보자. 앤은 못생기고 충동적이고 때로 거만해. 한마디로 문제아일지도 몰라. 그런데 앤은 계속 문제를 일으키기에 펄펄 살아있어. 앤이 만약 바른생활 어린이였다면 어땠을까, 아마 이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겠지. 앤은 어린 반항아이자 그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어린 아나키스트야. 그래, 뭔가 새로운 게 나오려며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p233-234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7-31
  • 카뮈와 함께 프란츠 파농 읽기
    카뮈는 노벨 문학상도 받았고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도 많아 여러 사람이 알고 있다. 그러나 파농은 아는 사람이 드물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읽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 카뮈와 파농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다. 특히 그들의 식민지관에 대해. 저자는 식민지로서 유사한 경험을 공유한 알제리와 조선을 비교한다. 일본식민지 정책이 프랑스, 영국, 스페인등의 서방을 모방한 것이며. 특히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 정책에서 언어교육을 통한 '동화정책'을 실시했다는 것을 지적한다. 또한 130년 동안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 출신 카뮈의 문학이 식민주의를 문학에 반영하지 못한 것을 지적한다. 35년 동안 일제의 식민지였던 한국이 해방되고도 일제를 청산하지 못해 지금까지 겪는 어려움을 생각하면, 무려 100년이상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 출신 카뮈가 알제리해방을 찬성하지 않고 동화정책에 찬성한 것은 그의 평생 그가 프랑스인으로 착각하고 살아오게 한 주변 환경과 정책, 역사에도 책임이 있지만, 그럼에도 비슷하게 같은 환경에서 살았지만 다른 입장을 취했던 파농같은 인물이 있다. 유대인은 쓴나물과 누룩없는 빵을 먹으며 선조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전통을 통해 자기의 언어와 풍습을 지켜왔다. 카뮈의 정치적 성향은 아나키스트였기에 취한 태도였다고 변명 할 수도 있다. 어쨌든 사람은 자기가 살고 있는 역사적, 정치적, 환경적 상황을 직시하지 않으면 자기가 어떻게 사는지,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수 없는 것이다. 지금 나는 역사의 물결 속에서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이책을 읽고 드는 생각이며 위대하다고 하는 사람일수록 언젠가는 역사의 심판을 받고야 만다는 생각이 든다. 카뮈와 파농은 모두 알제리 출신이다. "프랑스인이나 유럽인은 카뮈를 결코 알제리인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아예 알제리를 설명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뮈는 알제리를 빼고서 절대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고 작가 박홍규는 말한다. 그러면 알제리가 어떤 나라인지 잠시 알아본다. 알제리의 현재 정식 국명은 '알제리 민주인민공화국'이다. 면적은 한반도의 20배가 넘고 남한보다 40배 이상이나 인구는 2천만 명을 조금 넘는다. 그러나 내륙은 대부분 사하라 사막이어서 사람들은 북쪽 해안가에 모여 산다. 수도 알제는 지중해에 면한 바닷가에 있고, 인구는 2백만명 정도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는 대단히 크고 현대적인 도시 중의 하나다. 1954년부터 시작된 알제리 해방투쟁은 쿠바, 베트남과 더불어 20세기 후반 민족해방투쟁의 거대한 발자취였다. 알제리의 선주민인 베르베르족은 기원전 2세기에 침입자인 카르타고를 격퇴하여 최초의 통일국가를 세웠다. 그러나 곧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7세기에는 아랍인의 지배를 받았으며, 16세기 이래 다시 터키인의 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1830년 프랑스가 침략했다. 터키는 곧 프랑스에 항복하여 알제리는 1834년 프랑스 영토로 선언됐으나, 선주민은 1871년까지 프랑스와 싸웠다. 1850년 11만 헥타르 정도였던 식민자 소유지는 1세기후 그 100배로 늘었다. 반면 알제리 농민이 소유한 국토의 1/3은 대부분 황무지였다. 1940년 반이상의 농가가 토지를 갖지 못했고, 농민의 칼로리 섭취량은 유럽인의 1/3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야말로 빈곤의 극치였다. 식민지화는 문화 강제의 역사였다. 1850년경 프랑스 교육제도가 강제된 이래 1세기동안 아랍어 교육은 금지했다. 1938년 아랍어는 외국어로 인정되었는데, 그것이 프랑스어와 함게 공용어로 인정 받은 것은 1947년 이후다. 초. 중등학교에서는 일주일에 두시간만 가르칠 수 있었다. 당시 초등학교 취학률이 15퍼센트 가량이었다. 알제리에서는 19세기 말부터 약간의 반란이 이어지다가 1945년 4만명이 죽은 대학살을 계기로 민족운동은 더욱더 적극적으로 변했다. 1954년 민족해방전쟁이 터져 1962년에 끝났다. 카뮈는 1960년에 죽었다. 알제리 민족해방 2년 전에 죽은 것이다. 그의 생애는 제국주의 식민지와 떼려야 뗄 수 없으나, 1940년부터 알제리를 떠나 있었다. 반면 파농은 전쟁이 터지기 1년 전인 1953년에 알제리에 와서 전쟁이 끝나기 1년 전인 1961년에 죽었다. 전쟁동안 카뮈는 프랑스에 있었고 파농은 알제리에 있었다. 두사람이 살아 생전 알고 지내지는 않았다. 저자는 거의 모든 카뮈의 작품에서 낱낱이 그의 식민지관을 짚고, 파농의 작품과 일생을 깊이 있게 적고 있다. 이렇게 재밌고 깊이 있는 글을 쓰는 박홍규의 팬이 되었다.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7-30
  • 두레, 농민의 역사 " 양극화 시대에 생각해 보는 '두레의 꿈
    지금 시대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양극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양극화는 말 그대로 양쪽 삶의 모습이 극한으로 다른 것이다. 어떤 이는 몇 억짜리 집이 작아서 이사를 가지만 어떤 사람은 천만 원짜리 전셋집을 날려 자살을 하기도 하는 시대가 우리가 살고 있는 양극화 시대의 모습이다. 빈부의 격차로 이뤄지는 양극화 말고 또 다른 양극화가 있다. 그것은 도시와 농촌의 양극화다. 도시는 세련된 이미지와 편리한 생활 그리고 더 낳은 교육과 취업을 보장하고, 많은 자본의 투자로 인해 기회의 땅이 된 반면 농촌은 오래된 이미지와 불편한 생활 그리고 적은 직장과 낮은 교육 여건, 적은 투자로 인해 기회라는 새가 떠나 버린 낡은 곳이 된지 오래다. 우리 사회에서 농촌에 대해 관심을 갖는 때는 농민들이 농토에 있을 때가 아닌 아스팔트 거리를 매울 때다. 또 농촌은 고향의 향수를 팔고, 도시에 살고 있는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의 관심을 충족해줄 방송프로그램에서나 찾아가는 곳이 되어버렸다. <두레, 농민의 역사>라는 책 한 권이 전해진 것은 한 달 전이었다. 8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농민의 역사라는 낯설지만 결코 싫지 않은 주제가 나를 흥분하게 했다. 그래 언제 농민의 역사가 한 번이라도 제대로 기록되어 본 적이 있던가? 어디 한 번 읽어 보자. "지구상에서 농민만큼 보편적인 존재가 없는 반면 그만큼 조명을 받지 못하는 존재도 드물 것이다" - <두레, 농민의 역사> P.32 삼국사기를 썼던 김부식이 살던 시대나 지금이나 밥 먹고 살기는 매한가지인데 농민의 역사가 우리에게 조명 받은 적은 그때나 지금이나 없었다. 농민이 생산한 밥 먹는 사람들이 그 밥을 생산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했던 것이 그 동안 우리 역사였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강현의 책 <두레, 농민의 역사>는 의미 있는 책이다. 저자인 주강현은 책을 통해 농민의 역사가 기록된 것이 없어 그나마 농민들의 조직이었던 두레를 통해 농민의 역사를 적어 보는 것이라고 했다. 20여 년간 답사와 채록한 구술 자료, 수백 장의 사진을 직접 찍어 가며, 말 그대로 발로 쓴 책이다. 하지만 두레라는 책은 존재하지만 더 이상 한국 농촌에 두레는 존재하지 않는다. 두레가 농민들의 삶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였다. 19세기 이후 상품화폐의 발전으로 품팔이 노동과 채무고용노동형태인 고지(雇只)가 급속하게 불어났다. 또 일제 식민지 정책에 의해 조선 사람의 힘을 결집 시키는 집단 놀이나 의례, 공동체적 관형을 왜곡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이 이루어졌으므로 두레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결국 두레는 1960년을 기점으로 농민의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두레의 전통은 아직도 농촌에 남아있다. 상부상조와 이웃간의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그것이다. 두레의 사전적 의미는 상부상조하는 농민의 공동체다. 누구나 아는 사전적인 의미다. 하지만 더 나아가면 두레 안에는 음악과 춤 그리고 공동체적 삶의 지향이 그대로 담겨 있다. 더불어함께 일하고 춤추면 지내는 공동체의 꿈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양극화 시대에는 모든 것이 개인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타인의 고통은 나의 고통이 아닌 그들만의 고통이 되고 함께 사는 이웃에 고통이 있다 한들 내가 재미있고 행복하면 그만인 시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누구나 언제까지 행복하거나 재미있을 수만은 없다. 내가 행복했던 그 순간에도 항상 고통 받는 누군가와 이웃이 존재했던 것처럼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불안이 하루하루를 힘들게 한다. 공동체 사회에서 이웃의 아픔과 고통은 곧 우리의 고통과 아픔이 되었다. 그래서 그 고통은 개인의 고통이 아닌 공동체의 고통이 되어 공동체 안에서 치유 받고 위로 받으면 상처는 아물어갔다. 인간이 유토피아를 꿈꾼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밥 먹고 살만 하면 유토피아인 줄 알았던 시대도 있었고, 집집마다 자가용이 있으면 될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행복은 경제발전과 함께 오지는 않았고, 우리의 유토피아는 요원하기만 하다. 공동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 모델의 모습은 우리 선조들이 행했던 '두레'에서 찾을 수 있다. 한 마을 한 사회를 이루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하나가 되어 풍물굿을 치고, 함께 노동요를 부르며 일하는 사회, 계급적 차별과 돈의 차별이 아닌 하나가 되는 대동사회의 모습이 오래된 우리의 과거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꿈을 실현 시킬 수 있는 유일한 곳인 농촌이 붕괴되고 있다. 그와 함께 더불어 일하는 즐거운 삶도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희망을 놓아버리긴 이르다. 다시 귀농을 꿈꾸고 두레를 꿈꾸며 공동체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양극화 시대의 해법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두레 있었다. 그 해법을 찾고 싶다면 <두레 농민이 역사>를 읽기 바란다.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7-26
  • 파란하늘 빨간지구
    이책을 환경과학 교과서로 채택하면 좋겠다. 지구인 모두가 이 책을 읽고 발 딛고 사는 이 지구가 어떤 상황인지 알면 좋겠다. 더이상 개발은 멈추고 자연 보존과 복구에 힘써야 할 때다. 138억 년 전 빅뱅 그 순간 인간이 탄생할 확률은 거의 0 이었다. 그동안 우주와 태양계에 변화가 일어났고, 특히 지구는 다른 행성에 비해 극심한 변화를 겪었다. 이 변화 과정에서 인류 생존에 필요한 우연들이 일어났다. 이 우연 가운데 하나라도 없었더라면 인로 탄생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생명체의 최정점에 오른 위대한 존재가 아니다. 우연히 적합한 기후가 출현했고, 생명의 나무가 분화되는 과정에서 우연히 우리가 자연선택을 받았을 뿐이다. 적합한 기후의 출현은 우연이었지만, 우리 생존에는 필연이다. 이제 인간이 기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이 의도하지 않은 이 우연이 지구를 파국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인간의 신통함은 이 우연을 안다는 데 있고, 인간의 위대함은 이 우연을 다루는 데 비로소 발휘도될 수 있을 것이다. p22 지난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지구에 상처를 냈지만, 지구는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무위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 인류는 지구에 가한 흔적을 모든 곳에 남기고 있다. 우리 주변만이 아니라 깊은 바다의 퇴적물에도, 심지어 인공위성 궤도에도 인간의 흔적이 있다. 그리고 대기 안에는 온실가스와 오염먼지를 채우고 있다. 이는 인류의 삶을 안정과 지속에서 혼란과 변화로 바꾼다.p53 고대 그리스인은 지점이 다르면 때에 따라 햇빛이 지구에 비치는 시간과 경사각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서양에서 기후climate는 그리스어에서 경사를 의미하는 'klineinslope'에서 유래했다. 동양에서는 1년을 24절기로 구분하고 15일로 이루어진 기를 다시 3등분 한 5일을 1후라고 했다. 그래서 1년이 72후로 이루어지며 이 5일이 자연 변화의 치소 단위이자 삶의 리듬이기도 햇다. 이런 연유로 닷새 만에는 곳곳의 산물을 교환하며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오일장이 열리게 되었다.p60-61 기상학자는 "날씨는 기분이고 기후는 성품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기분은 상황에 따라 바뀌지만, 성품은 정체성이기에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그 어떤 상활에서도 기분이 같다면 정상이 아닐 것이다. "항상 맑으면 사막이 된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야만 비옥한 땅이 된다"라는 스페인 속담처럼 날씨도 기분처럼 바뀌어야 정상이다.p62 인간의 몸은 같은 충격을 받아도 급소를 맞으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지구도 온실가스라는 급소를 가지고 있다. 온실가스는 대기 중에 매우 적은 양만 존재하므로 여기에 조금만 더해져도 그 변화가 커진다. 그런데 이 변화 때문에 지구가 휘험해지고 있다. p63 전체 온실가스 중에서 양이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는 지구온난화의 약 74페센트에 기여한다. 그러나 전체 공기 중에서는 이산화탄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다. 1만 개의 공기 분자 중에서 이산화탄소 분자의 수는 약 네 개에 불과하다. 이처럼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능력은 덩치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산화탄소는 100개의 공기 분자 중에 1개만 있어도 지구 평균 기온이 100도에 도달할 정도로 강펵한 오실효과를 품고 있다. p66 온실가스가 없다면, 지구 적외선 ㅇ너지는 모두 우주 공간으로 빠져나갔을 것이다. 그러면 전 지구 평균 지상 기온은 영하 18도로 지구 전체가 얼음으로 뒤덮여 생명이 생존할 수 없다. 실제 온실가스 덕분에 평균 기온이 15도를 유지해 우리가 지구에서 살 수 있다. 이처럼 자연에 의한 온실효과는 인류가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인간이 초래한 온실효과는 극한 날씨 현상을 발생시키고, 빙하가 녹아 해수면을 상승시키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온실가스는 지구환경에서 소금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소금 없이는 살 수 없지만, 소금을 너무 많이 섭취하면 몸이 해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p71 기록이 한 번 깨지면 우연이다. 다시 깨지면 우연의 반복이다. 세 번째 깨지면 추세가 된다. 매번 깨지면 변화가 된다. p72 이 모든 영향을 함께 고려하면, 기후계의 반응 시간은 주로 열대와 아열대 해양에서 표층 열이 바람으로 섞이는 층까지 퍼지는 시간으로 결정된다. 이 반응 시간 때문에 현재 이산화탄소 농도는 아직 기온 상승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이를 '이미 저질러진commitment온난화'라고 일컫는다. 다시 말해 지금 나타난 지구온나화는 수십년 전 온실가스 농도에 대한 반응이다. p75 자연에서 일어나는 현상 중 이유 없는 것은 없다. 태풍은 지구의 에너지 불균형을 조정하기 위해 발생하는 현상이다. 태양열이 극지방보다 적도에 더 많이 니리쪼크ㅗ 나북 간 어네지 차이가 발생한다. 이 차이를 해소하지 않으면 적도 지방은 점점 뜨거워지고 극지방은 점점 추워져 생명이 살 수 없게 된다. 극단적인 빈부 격차가 일어나면 공동체가 붕괴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p83 우리는 아무 대사를 치르지 않고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엔 공짜는 없다. 탄소 배출은 태풍을 강하게 하고 인명과 재산 피해를 가져와 결국 비용을 치러야 하는 행위가 된다. p87 지구위험한계를 관리하는 것은 우리가 아플 때 체온을 관리하는 것과 같다. 체온이 442도 정도 되면 우리 몸은 고위험 상태에 도달한다. 그 경계를 넘어서면 생존자가 아니라 사망자로 바뀔 수 있다. 그러므로 산 상태와 죽은 상태 간의 한계인 42도에 도달하기 전에 조처해야 한다. 우리는 체온보다 열이 올라가서 머리가 아프면, 일하지 않고 쉬거나 약을 먹는 등 안전한 체온을 유지하려 한다. 지구 위험한계도 고위험 영역에 진입하기 직전인 불확실 영역에서 사전예방을 해야만 한다. p116 현재 지구온나화가 일어나 1도 정도 상승했는데도 곳에 따라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발생해 기후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1.5도 이상으로 상승하면,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언제나 세계 모든 곳에서 발생할 수 있다. 현재 10년마다 거의 0.2도씩 데워지므로 탄소 배출향을 줄이지 않는다면, 2040년경에 기온 상승이 1,55도에 달할 것이다. 1.5도에서 2도까지 상승하면, 그 영향이 같은 비율로 단순히 커지지 않는다. 그 대신 작은 변화가 다시 원인을 키워 큰 변화를 일으키는 '양의 되먹임'이 시작돼 지구를 근본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든다. 이 때 지구는 자체 변동을 통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잇는 탄성력을 잃게 된다. 스프링은 조금 늘렷다 놓으면 제자리로 돌아오지만, 너무 많이 당기면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는 특성과 같다. 2도를 넘게 되면, 지구는 오늘날 문명을 건설할 수 잇는 기후 조건을 제공했던 지난 1만 2,000년 동안의 홀로세 기후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p127 1,5도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온실가스 배출량은 2030년까지 2010년 수준에서 44퍼셑트로 줄여야 하면, 200년에는 순 제로에 도달해야 한다. 순 제로는 특정한 기간에 이산화탄소의 인위적 배출량이 인위적 흡수량과 균형을 이루는 것을 의미힌다. 이를 위해 200년까지 석탄 발전을 거의 중단해야 한다. 재생에너지가 1차 에너지 공금의 50-60퍼셑느, 전기 사용량의 70-85퍼센트를 공급해야 한다. 그리고 산업계의 온실 가스 배출량은 2050년에 2010년 수준의 75-90페센트 수준으로 낮추어야 한다. 이것은 석기시대가 돌이 모자라서 끝난 것이 아닌 것처럼, 화석연료가 있어도 쓰지 않는 새로운 시대로 가야 함을 의미한다. p128 지구온난화를 2도가 아닌 1.5도로 유지하면 세기말까지 20조 달러 이상을 절약할 수 잇으며, 세계적으로 불평등이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햇다. 하지만 기온 상승 2도를 넘어서면 세계 경제의 샹산량이 상당히 줄어들 수 있음을 보엿다. p130 이제는 시간이 우리 편이 아니다. 인류 문명과 자연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가르는 문턱값이 기온 상슴 1.5도다. 안정된 시기에는 상실한 거산으로충분하지만, 변화의 시기에는 감각이 더 중요하다. 그 감각의 중심에 1.5도라는 목펴가 놓여 있다. p131 식량 위기는 도시화를 통해서도 일어날 수 있다. 이 지구에는 모든 인구가 60일 이상 먹을 만큼 충분한 양의 식량이 없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두 달분의 식량 비축을 권고하고 있으나, 도시에는 평균적으로 1주일 정도 먹을 수 있는 양의 음식만 있다. 우리나라 인구의 약 90퍼센트는 도시에 거주한다. 식량 위기 상황이 닥치는 경우를 대비해 낮은 식량 자급률과 함께 과도한 도시화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안정적인 식량 확보와 함께 도시로 원활하게 식량을 전달하는 체계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영국 광부들은 카나리아와 함께 광산에 들어갔다. 호흡기가 민감한 카나리아는 인간보다 유독카스에 빠르게 반응하므로 카나리아를 보고 닥쳐올 위험을 미리 감지할 수 있었다. P139 우리나라 토양은 대부문 산성화되어 있다. 특히 도시 토양은 산성도가 더 심하다. 산성 토양에서는 각종 유기물을 썩게 하는 미생물의 수가 줄어들어 영양분을 제대로 만들지 못한다. 황사는 대부분 알칼리 성분이므로 산성 토향을 중화ㅏ시키는 고마운 역할을 한다. 황사도 휩쓸고 지나가면, 우리나라 바다와 북태평양에 철과 미네랄을 뿌려 해양 생태계를 풍요롭게 한다. 이후 황사는 하와이까지 날아간다. 풍화된 화산석 위에 이루어진 하와이 숲에 필요한 인 성분을 공급하기도 한다.p163 시민들은 선진국 수준의 깨끗한 공기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오염먼지가 쉬운 문제였다면 시민들의 엄청난 관심에 힘입어 이미 해결되었을 것이다.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인 우리나라가 오염먼지 문제에 시달린다는 것은 재원의 문제도 아니고 기술의 문제도 아니다.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와 집행 의지의 문제댜. p180 시민은 맑은 공기를 요구하면서 오염먼지 배출로 누리는 편익을 함께 요구 할 수 없다. 오염먼지는 정부 관료와 전문가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모든 사회 구성원이 함께 성찰해야 하는 문제다. p180 작디 작은 오염먼지 안에 무시하지 못할 위험과 갈등을 감추고 있다. 오염먼지는 산업 문명의 실패가 아니라 성공에서 발생했다. 화려한 문명 안에서 축적되는 오염먼지로 우리는 병들고 서로 갈등한다. 작은 먼지가 거대 산업 문명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이렇게 먹고 쓰고 버리고 사는 게 맞느냐고,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p181 기후변화는 오랜 기간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원인이 축적되어 임곗값을 넘으면 갑작스펍게 새로운 환경으로 진입한다. 급변하는 환경의 잠재적 위험을 대비하지 못하면, 사회적인 갈등이 더욱 증폭되고 결과적으로 국가 운명에 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환경을 감당할 능력이 없을 때 싸움을 하며, 굶주림과 침략의 갈림길에 서 잇을 때마다 침략을 선택해왔다.이를 피학자 세계적인 기구들과 미국 정보기관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에서는 물, 식량, 에너지 수급의 차질이 국가 위기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이지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p214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이익은 부국과 상류층에 축적되는 반면, 위험은 빈국과 하류층에 축적된다. 기후변화는 부자와 빈자, 중심과 변두리라는 엄연히 존재하는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킨다.p219 화가 클로드 모네는 루앙 성당을 여러 번 그렸다. 가장 뛰어난 그림을 고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햇빛에 따라 다르제 보이는 성당의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서였다. 루앙 성당의 참모습은 하나의 뛰어난 그림에서 나타나는 게 아니라 여러 그림의 차이에서 비로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엇다. p253 이처럼 과학은 확실한 만큼 불확실하고, 기존 난제를 해결한 만큼 새로운 문제를 만난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어는 것도 확실하지 않다'라는 것이다. p254 이는 다윈의 사촌인 프랜시스 골턴이라는 통계학자가 이미 1907년에 확인한 사실이다. 당시 영국 시골 장터에서 소 한마리를 무대에 올려놓고 몸무게를 맞히는 대회가 열렸다. 골턴이 지켜보던 날은 800여 명이 이 행사에 참여햇는데, 정확하게 소 무게를 맞힌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적어낸 소 무게의 평균을 내보니 거의 정확했다. 단 한 사람도 맞히지 못했지만, 여러 사람의 판단이 모이자 정확한 무게를 맞힐 수 잇는 '집단지성'이 작동한 것이다. 집단지성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하다. 집단이 편향되지 않아야 한다. 독립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어야 정확한 어울림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에서도 각자의 선거권이 진정한 가치를 가지려면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서로 종속적인 관계가 아니라 독립적인 관계여야 하는 것과 마찬가디다. p256 날씨 에축에서도 모두 비슷하게 우수한 100개 결과를 내는 경우보다, 성능이 좀 떨어진다 해도 다양한 100개의 앙상블 결과를 산출할 때 더 효과적이다. 이를 인간 사회에 적용하면, 비슷한 생각을 하는 우수한 100명보다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평범한 100명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온실가스 배출량 시나리오는 사기꾼의 주사위에 비유할 수 있다. 시나리오가 '특정 숫자 쪽에 무게가 더해지' 주사위처럼 작동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에 따라 각 지관의 지구시스켐모형은 어느 한쪽에 편향된 결과를 산출한다. 다시 말해 모형의 결과는 외부 강제력에 따라 끌개에 정착한다. 이는 나한 주민과 북한 주민의 평균 사망 연령이 각각의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라 뚜렷하게 차이가 나는 것과 같다. 이 경우 '사회젹에적 조건'이 온실가스 배출량 시나리오'이고 '주민'이 '개별 모형의 결과'다. 각 기관 모형에서 산출한 결과들을 모아 평균을 내서 미래를 전망하고, 분산을 확인해 전망의 신뢰성을 평가한다. 이렇게 기후 전망은 확실한 것만이 아니라 불확실 한 것도 함께 말할 수 있다. 256-266 날씨는 폭풍우나 눈사태같이 짧은 시간 규모의 대기 현상을 예측하지만, 기후는 해양, 빙하, 지표 변화등 긴 시간 규모의 현상을 다룬다. 또한 기후는 인간 활동에 따른 온실가스 변화와 같이 천천히 일어나는 요서에 영향을 받는다. 날씨 현상은 카오스 특장 때문에 2주 이상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2주 이내의 특정한 날에 어떤 현상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위해서는 초기조건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런데 기후는 계절에서 수십 년에 걸친 평군 추세이므로 초기조건에 민감하지 않다. 어떤 사람이 몇 살에 사망할지 예축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우리나라 평군 사람연령이 약 80세라는 것은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날씨와 기후가 다르듯 날씨 예보와 기후 전망도 서로 다르다. 그러므로 날씨 예보의 불확실성을 근거로 기후 전망의 불확실성을 이야기할 수 없다. 기후 전망의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나고 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건 아니다. p266 자연재해에 대한 예측 불확실성은 우리를 불안하게 하지만, 동시에 미리 대비하고 위기에 더욱 신중하게 만들어 그만큼 위험을 감소시킨다. 결국 우리의 실력은 확실한 상황에서가 아니라 불확실한 상황에서 드러난다. p273 특히 자연재해와 기후환경 분야의 업무 역량은 기술개발 수준에서 결판납니다. 그러므로 과학기술은 국가 과제를 해결할 수단을 넘어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과학기술의 깊이가 깊을수록 창으적이고 유연한 적용이 가능하여 새롭고 다양한 정책을 펼칠 수 있엇습니다. 과학기술이 핵심이 아니라면, 정책은 구호를 내걸었으되 그것을 추진할 수단도 역량도 가질 수 없습니다. 기술기발 없이는 새로운 세계를 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제 구형 로켓에 태극기를 그려놓고 쏘아 올리는 모습을 애국가 배경화면으로 보여줍니다. 이때 우리는 가슴에 손을 얹고 기립해야 합니다 . 이 어처구니없는 모습이 우리나라 과학기술 성과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가합니다. 러시아제 로켓을 쏘아 올린 게 문제가 아니라, 러시아제 로켓 앞에 우리를 기립하게 만드는 국가과학기술 성과의 수준이 문제인 것입니다. p284 성과는 우리가 일할으로써 얻게 되는 결과이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성과가 국가 연구개뱔의 목적이라면, 우린 이유도 모른체 결과를 만드는 조직폭력배와 다를 게 없습니다. 책임운영기관의 성과 평가는 실질적 가치 창출과는 상관없이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인력과 세금을 투입해야만 하는 제도입니다. 제대로 바꿀 수 없다면 당장 없애야 할 제도입니다. p285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7-26
  • 지혜의 숲으로
    저자 한길사 대표 김언호가 세계를 다니며 도서관, 책방, 책이 있는 곳을 찍은 무겁고 두꺼운 사진집이다. "한 도시에는고층 건물도 있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술관과 박물관, 극장과 도서관과 서점입니다. 따뜻한 등불 아래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의 그림자, 이것이 한 도시의 문화와 정신을 상징합니다. 시민들이 일상을 드나드는 서점이 없다면 그 도시는 품격을 갖추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먹고삽니다.사람들은 이야기하면서 성장합니다.책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릇이 책입니다.”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7-24
  • 난세일기
    김용옥 도올은 워낙 유명해서 도올이란 그의 호를 못들어 본 사람은 아주 드물거라 생각한다. 나도 그의 이름은 들어보고 그의 강의도 들어보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유는 그의 목소리다.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를 조금만 들으면 가슴이 답답해지며 왠지 모를 울화같은게 가슴에서 치민다. 그가 목소리까지 좋았다면 아마도 더 많은 팬이 생겼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혼자한다. 그런데 그는 스스로 노래를 잘 한다고 말하니 말하는 목청과 노래하는 목청이 다르긴 한가보다. 그의 저서는 100권이 넘는다. 그가 아는 것이 많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책은 한번 낸 사람이 자꾸 내기 마련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뭐든 처음이 어렵지 말이다. 그가 다닌 대학은 7개 대학이고 전공한 학과는 생물학, 철학, 중국철학, 동아시아언어문명학, 한의학이다. 그러니 할 말도 많을게 당연하다. 이 책은 한달 동안의 일기 형식이라 다른 전공책과는 달리 쉽고 읽을거리가 많다. 4월 24일 부터 한달간의 기록이다. 물론 매일은 아니다. 바로 엊그제 일어난 따끈따끈한 사건에 대해 말하며 그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저서와 자신의 일생에 대해 말한다. 그는 윤정권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같은 당면한 문제, 그리고 일본과의 외교같은 이슈에 대해 제대로 소리를 낸다. 또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대해 비교 설명하니 설득력과 재미가 함께다. 더불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어린 시절부터 더듬으며 여지없이 그 잘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유명세로 그는 각계에 걸쳐 많은 소위 유명인사들을 만났는데 그 실명이 여럿 나오고 그들에 대해 대충이 아니라 깊이 있게 적고 있다. 첫날인 4월 24일은 성균관대학교교수의 시국선언에 대해 언급한다. "그는 놀라웁게도 명료한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돈많은 사람들이 마음놓고 돈을 더 벌 수 있는 사회, 국민의 공적인 복리에 기여하는 조직을 될 수 있는 대로 사유화 시켜 경쟁구조 속으로 집어넣어 효율을 높여햐 한다는 것, 남북의 관계는 북한이 정신차릴 대까지 계속 압박해야 한다는 것, 일본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일본이 과거 침략만행을 더 이상 들추지 말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한.미, 일경제, 군사동맹을 강화함으로써 안전한 보금자리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p12)(여기서 그는 윤석열이다: 나의 설명) 이러니 지금이 난세라는 것이다. 구례 사람들은 아마도 그의 이름과 더욱 친근하지 않을까 싶다. 구례 문화원 앞에 '구례찬가'비를 그가 썼다고 하며 구례와는 인연이 깊다. 그는 지금 75세 인데 피아노를 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팔순 잔치에는 자신의 음악회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야 마는 사람인 것 같다. 그가 하고 싶었는데 못해 본 것이 아마도 음악인 것 같다. 5년 후의 계획을 말하는 노인의 팔팔함은 가히 존경스럽다.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7-21
  • 참된 문명은 사람을 죽이지 아니하고
    다나카 쇼조는 제1회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 내리 6선을 하며 ‘선거의 신’으로 불린 정치가였다. 그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최초의 공해 사건인 ‘아시오 광독 사건’과 뒤이은 ‘야나카 마을 수몰 반대 운동’에 자신을 던진 사회운동가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참된 문명’의 길을 깨우친 사상가였다. 그의 시대는 불의했고, 문명을 가장한 야만이 드리운 그늘로 선뜩했다. 다나카 쇼조는 하루하루,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 쉼 없이 불의를 헤치며 문명이 드리운 어둠을 밝히고자 힘썼다. 그는 점점 나락으로 빠져드는 민중의 삶을 마음 아파했고, 참된 문명의 길을 거스르며 오로지 부국강병의 길로 내달리는 일본제국의 오늘과 내일을 걱정했다. 그러나 ‘오늘은 오늘’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는 것. 차별과 억압에 시달리는 눈앞의 이웃을 지나치지 않고 자신의 온 힘을 다해 구하고자 애쓰는 것. 그는 죽는 날까지 자신의 말과 사상에 비추어 한 치도 흐트러짐이 없이 걸었다. 그의 생애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나날이 조금씩, 그러나 쓰러져 그칠 때까지 시대의 불의와 문명의 야만성을 걷기 위해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싸움의 연속이었다. 21세기를 위한 사상가, “헌법 9조(평화헌법)의 선각자” 다나카 쇼조 다나카 쇼조는 동료 의원들이 “지방의 자잘한 일”이라며 내팽개친 아시오 광독을 자신의 문제로 끌어안았다. 의회에서 그 매듭을 풀기 위해 온 힘을 다했고, 그것이 여의치 않자 6선 국회의원 자리를 던지고는 목숨을 걸고 메이지 덴노에게 직소했다. 그리고 광독 피해 지역이 수몰 위기에 처하자 마을로 들어가 남은 마을 사람들에게 배우고 함께 싸우며 서슴없이 끝까지 나아갔다. 사사로움을 버리고 공공의 가치를 지키고자 애쓰는 삶. 가장 약한 것들로 가장 강한 것과 맞서는 삶. 어중간한 사람의 법이 아니라 온전한 자연의 이치를 따라 걷는 삶. 나날이 의로움을 더해 가는 삶. 그리하여 하루하루 더 완전해지는 삶. 그래서 다나카 쇼조는 아시오 광독 사건이라는 싸움터에서 끝내 패배했지만, 그의 싸움과 사상은 지금껏 살아남았다. 끝까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던 그의 싸움은 일본의 근대적 시민운동과 환경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쇼조가 그 전장에서 갈무리한 통찰은 근대 문명의 본질을 단숨에 꿰뚫었다. 그의 발걸음과 사유, 성찰은 사후 100년을 훌쩍 넘어 여전히 불의와 문명의 야만성과 싸우는 이들을, 우리 삶을, 우리가 꾸리고 살아가는 국가 공동체를, 위기의 동아시아를,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거침없이 뻗기에 급급한 근대 문명을 돌아보도록 이끈다. 분에 맞는 소국이라면 족하다 _ 새로운 일본을 위한 제언 이 책은 평생에 걸쳐 다나카 쇼조의 삶과 사상에 천착해 온 한 연구자가, 근대 문명이 낳은 대재앙이라 할 수 있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를 마주한 뒤, 크나큰 충격 속에서 서둘러 써 내려간 글이다. 다나카 쇼조가 돌아간 지 1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음에도, 왜, 어째서, 일본 사회는 그간 쇼조가 남긴 교훈을 새기지 못했는가. 깊은 분노와 참담함이 밴 고마쓰 히로시의 문장은 쇼조의 글을 거울삼아 동시대 우리 문명의 어그러진 단면을 서늘하게 베어 낸다. 우리는 이제 대국을 우러르며, 대국을 좇는 일을 단호히 포기하자. 분에 맞는 소국이라면 족하다. 올림픽 메달 수를 다투지 않아도 좋다. 세계 정치의 주도권을 거머쥐지 않아도 된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따위를 노리지 않아도 상관없다. 경제 대국이라고 찬사를 받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다른 나라를 방해하지 않고, 다른 나라에 폐를 끼치지 않는, 그런 깊고 그윽한 몸가짐의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132쪽~133쪽, 고마쓰 히로시 다나카 쇼조는 풀뿌리 민중의 삶을, 자치의 뿌리인 마을을, 가없이 베풀어 주시는 자연의 은혜로움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곧 국익이고 문명이다, 우리는 국가가 아니라 자연과 하나된 삶을 살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가 꿈꾼 것은 부국강병이 아니라, 대국 일본이 아니라,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연의 은혜로움 아래에서 사람다움을 온전히 지켜 가는 삶이었다. 저자 고마쓰 히로시는 다나카 쇼조의 말과 삶을 찬찬히 더듬으며, 바른 정치와 삶, 문명의 길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그려 보인다. 다나카 쇼조의 문장과 고마쓰 히로시의 글이 교차할 때, 일본이라는 나라가 일구어 온 근대국가의 어제와 오늘이, 산과 강, 마을과 사람쯤이야 대수로이 여기지 않은 채 오로지 ‘성장’이라는 한길로만 부지런히 달려온 근대 문명의 민낯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후쿠시마는 어쩌면 그 당연한 결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을 뿐이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사회에서 다나카 쇼조를 새롭게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이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본 시민운동의 아버지, 다나카 쇼조와 함께 “그때 역사가 움직였다” NHK for School은 2014년 총 41화로 일본 역사를 정리하면서 39화 [히라쓰카 라이초·다나카 쇼조, 시민 운동이 무르익다]에서 다나카 쇼조를 비중 있게 다룬다. 일본 최초의 공해 문제, 아시오 구리 광산 광독 사건과 그 해결을 위해 힘쓴 다나카 쇼조의 저항은 일본의 역사를 분명하게 가르는 중요한 변곡점 가운데 하나다. NHK가 2002년 다나카 쇼조와 아시오 광독 사건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면서 다나카 쇼조가 아시오 광독 피해 주민들의 고통을 마주한 “그때 역사가 움직였다.”고 평가했듯이, 일본의 시민 불복종 운동과 환경 운동은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아시오 구리 광산은 1880년대부터 일본 최고를 넘어 아시아 최고 생산량을 기록하며, 근대 일본의 산업과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 제련 과정에서 엄청난 유독물질 연기가 쏟아졌고, 가까운 마을들이 곧 쑥대밭이 되기 시작했다. 피해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아시오 구리 광산에서 유출된 광독은 와타라세 강으로 흘러들었다. 그리고 물난리가 날 때마다 광독을 머금은 물은 강과 잇닿은 논밭으로 흘러넘쳐 땅을 오염시켰다. 피해 지역은 도치기·군마·사이타마·이바라키 네 개 현, 1억 평에 이르렀다. 광독은 강에 사는 물고기와 조개를, 강가에 무성히 자라난 조릿대와 갈대를, 강과 이웃한 기름진 땅에서 나는 풍성한 곡식과 채소들을, 굶주린 어미 뱃속에서 자라던 아기와 젖먹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와타라세 강이 베푸는 은혜로움에 기대어 살아가던 수많은 이들의 삶은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마을 자치도 그와 같이 부서져 갔다. 일부 광독 피해 지역을 지역구로 두고 있던 중의원의 국회의원 다나카 쇼조는 이들의 어려움과 마주했다. 하지만 수많은 피해 주민들과 쇼조의 노력에도 정부 관료들은 무거운 허리를 들지 않았다. 대국의 꿈을 향해 부국강병으로 바삐 치닫던 일본 정부는, 이들의 고통과 눈물을 되도록 조용히 역사에서 지우고자 했다. 의회에서 아시오 광독 사건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6선 의원 다나카 쇼조는 결국 스스로 국회의원직을 내던진다. 그리고 아시오 광독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상소문을 메이지 덴노에게 직접 건네고자 했다. 비록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이는 일본 근현대사에서 유일무이한 ‘직소 사건’으로 남았다. 목숨을 건 쇼조의 직소는 그날 도쿄 일대에 호외가 발행될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일본 전역이 아시오 광독 피해에 대한 분노와 동정으로 들끓었다. 피해 주민들과 쇼조의 외침을 성가셔 하던 정부는, 목숨을 건 쇼조의 직소 사건으로 여론이 달아오르자, 더는 뭉갤 수만은 없게 되었다. 하지만 마침내 정부가 내어놓은 해결책이란 어이없는 것이었다. 자꾸만 물난리가 나는 통에 와타라세 강과 그 주변 산과 들에 기대어 사는 주민들이 광독 피해를 입으니, 하류 일대를 유수지로 만들어 광독 물난리를 막아 보겠다는 계획이었다. 다나카 쇼조는 ‘신이 만들어 내려 주신 더없이 넓고 큰 권리’인 마을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마을 자치를 파괴하는 것은 곧 나라를 망치는 일과 같다며 강하게 맞섰다. 산을 황폐하게 만들고, 강을 더럽히고, 마을을 부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은 문명이 아니라고 일갈했다. 그러나 정부 역시 완강했다. 결국 예순넷의 다나카 쇼조는 노구를 이끌고 수몰 예정지 가운데 하나인 야나카 마을로 들어간다. 그리고 마을을 지키고자 남은 열아홉 가구 주민들과 함께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싸웠다.(야나카 마을은 메이지 중반까지 2700여 명이 살던 곳으로, 유수지 건설 계획이 발표된 뒤 땅을 팔고 떠난 주민들은 대부분 먼 홋카이도로 이주했다.) 다나카 쇼조와 야나카에 남은 주민들은 마을이 물에 잠기는 것을, “법률로 사람이 본래 안전하게 생활하고 있던 터전을 빼앗아, 주린 배를 쥐고 떠돌게” 만든 국가의 폭력을, 끝내 막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맞선 덕분에, 피해자들이, 그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이들이 모두 죽기를 기다리던 일본 정부의 바람과 달리 아시오 광독 사건은 역사에서 끝까지 지워지지 않고 남았다. 의로운 패배는 힘이 있다. 역사는 거기, 그 시공간에서 멈춰 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후 10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넘어 커다란 울림으로 돌아온 다나카 쇼조의 삶과 사상은 참다운 문명, 사람다움, 생명과 같은 보편 가치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의로운 분투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시대적 격류 속에서 그의 저항은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으나, 그 패배의 기록은 오히려 백년도 더 지난 오늘날, 과연 참된 문명이란 무엇인지를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될 우리들에게 무엇보다도 값진 정신적 유산이 되고 있다.” -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아시오 광독이라는 출발점에서 일본이라는 국가의 위기를 생각한다 아시오 구리 광산에서 뿜어져 나온 광독은 수많은 민중의 생존을 위협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시작부터 끝까지 광산 운영자의 편에 섰다. 피해 주민들이 내는 세금 총액이 아시오 광산이 내던 세금보다 더 많았음에도 그러했다. 아시오 광산에서 캐내는 구리는 대외 무역과, 무기 생산에 큰 보탬이 되는 자원이었기 때문이다. 근대적 경제 성장이란 대개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국가는 성장을 이끄는 거대 기업의 이해를 감싸고 돌며 민중의 삶을 모른 척 짓밟았다. 수많은 이들의 피해와 고통, 절규와 눈물은 “돈다발로 뺨을 후려치”며 덮었다. ‘커 나가는 일본’을 위해 필요하다면 누군가는 희생되어도 하는 수 없다, 하는 자세로 가차 없이 목숨붙이에 서열을 매겨 줄을 세워 온 역사였다. 그러고 보면 아베 정부는 느닷없이 나타난 ‘이상한’ 정부가 아니다. 근대국가 일본은 시작부터 꼬였다. 아시오 광독을 덮은 자들이 2차 대전의 책임과 전쟁 범죄를, 미나마타를, 후쿠시마의 실상을 덮었다. 근대국가 일본이 걸어온 역사 속 굵직한 어그러짐은 예외 없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 출발점에 바로 아시오 광독 사건이 있다. 길가에 구르는 작은 돌멩이들에게서도 눈길을 거두지 못한 사람, 다나카 쇼조에게 매혹된 지성들 다나카 쇼조는 가장 낮은 자리, 민중의 삶 그 한복판으로 들어가, 이들과 함께 싸우고 깨치면서, 근대 문명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에 잠재된 비인간성·반생태성·반문명성을 날카롭게 짚어낸 사상가였다. 그러한 문명관으로 동시대 일본 지식인들과 달리 동학농민운동의 가치를 알아보고 전봉준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그는 “물질이 모자람을 애태우거나 마다하지 않”으며 “온몸으로 공공에 이바지하는 삶”을 살았다. 끝내, 우물도 담도 남기지 않은 무소유의 삶이었다. 다나카 쇼조는 일흔을 넘긴 나이로 와타라세 강 강줄기를 걸어서 훑으며, 저항운동에 필요한 돈을 모으려 벗들의 집을 차례로 돌아 야나카 마을로 돌아오던 길에, 낯모르는 이의 집 툇마루에서 쓰러졌다. 그가 마지막까지 메고 다니던 바랑에는 [신약성서], ‘일본제국헌법’과 ‘마태복음’을 한데 묶은 책, 일기장 세 권, [와타라세 강 조사 보고서] 초고, 휴지 몇 장과 강 김, 그리고 돌멩이 세 개가 들어 있었다. 다나카 쇼조다운 마무리였다. 탈핵 운동에 헌신해 온 과학자 고이데 히로아키 교수의 연구실에는 다나카 쇼조의 사진이 놓여 있다. 세계적 음악가이자 사회운동가인 류이치 사카모토는 2018년 한국에서 자신의 특별전을 열며 “참된 문명은 산을 황폐하게 하지 않고, 강을 더럽히지 않고, 마을을 부수지 않고, 사람을 죽이지 아니한다.”라고 하는 다나카 쇼조의 말을 벽면 하나에 새겼다. 이 말은 오래전 일본 유학길에 오른 방정환 선생이 아끼는 후배 정순철 선생과 마주 앉은 자리에서 들뜬 목소리로 들려준 문장이기도 했다.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에서 한국 기독교계의 양심 박경미, 그리고 동학 연구의 권위자 박맹수에 이르는 걸출한 지성들의 다나카 쇼조론論에서 보듯, 다나카 쇼조의 삶과 사상은 10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넘어 곳곳에서 수많은 동아시아의 양심과 마주 울리고 있다. 출판사 리뷰 1904년 7월말, 쇼조는 야나카 마을이 수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홓로 마을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토지 매입을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며 야나카 마을의 자치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 p16 "정직한 이에게 신이 깃든다. 철저히 정직한 이에게는 철두철미한 신이 깃들고 어물어물 정직한 이에게는 신도 어물어물 깃듭니다." 이처럼 쇼조는 에도시대 이후의 통속 도덕 속에 서 있으면서도, 정직이라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보편적인 가치가 있음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p46 만일 그런 광경을 그저 지켜보고 불쌍하다 여기고, 듣기만 하며 가엾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피상일 뿐이다.1908년 6월 15일 p53 그래서 자본주의를 없애겠다는 큰 목적 앞에서 아무리 사고한 일로 여겨질지라도, 기노시타와 헨미가 야나카 마을 주민들을 '신의 백성'으로 삼아 '진정한 사람의 천국'을 야나카에 만들고자한 종교적 메시아주의의 숭고함을 잘 알면서도,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측은한 마음을 참을 수 없다."며, 쇼조는 현재를 구하는 쪽으로 움직이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쇼조의 '오늘은 오늘 주의'였다. 그리고 이러한 쇼조의 '오늘은 오늘 주의'가 한국의 기독교인 함석헌에게서도 공통점으로 발견된다는 것을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p61 조금이라도 사람 목숨에 해가 된다면 조금쯤은 괜찮다고 말하지 말라.p62 물을 맑게 하는 데도, 먼저 자연의 정화 작용을 최대한 살릴 필요가 있다. 가령, 바지락 한마리가 한 시간에 물 1리터를 정화한다고 한다. 강가의 갈대도 물을 맑게 한다. 바다라면 거머리말도 그렇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연의 정화 작용을 넘어서는 지경까지 물을 더럽히지는 말아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와 도쿄전력은 방사성물질이 엄청나게 든 오염수를 바다에 흘려보내는 '폭거'를 감히 실행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미나마타병을 일으킨 것과 똑같은 원리가 작용해서, 먹이사슬에 따라 해양 생물들에게 쌓인 다음, 끝내는 인간이나 큰 물고기가 해를 입지 않는다는 보증은 어디에도 없다. 벌써, 후쿠시마 현이나 미야기 현의 바다 밑바닥이나 바닥고기에서, 기준치를 크게 웃도는 방사성물질이 확인되고 있다. 수질 오염의 영향은 오랜 세월 동안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미래 세대의 '생명'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된다. p83-84 표결 결과, 국회의원 세비 증액안은 134대 125로 9표 차로 통과되었다. 하지만 쇼조는 반대 연설을 한 뜻을 지키려고 한 것일까, 의원 세비 전액을 스스로 되돌렸다. 이리하여 쇼조는 의원직을 사퇴하기까지 남은 임기 (1899년 4월부터 1901년 10월까지)중에 세비를 1엔도 받지 않았다. 다나카 쇼조가 '대단한 가난뱅이'라는 것은 온 국민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이것을 쇼조는 "때에 즈음한 덕의"라고 표현했댜. 지금이 어떤 대인지를 똑똑히 판별하고 시의적절한 덕의심을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걸어야 할 길이라는 것이다.p95 내려다 보시는 하늘을 우러르지 않으면 보통 사람은 타락하고 국민이 감시를 게을리하면 정치인은 도둑질을 한다. 1902년 8월 .p96 우리는 이제 대국을 우러르며, 대국을 좇는 일을 단호히 포기하자. 분에 맞는 소국이라면 족하다. 올림픽 메달 수를 다투지 않아도 좋다. 세계 정치의 주도권을 거머쥐지 않아도 된다.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따위를 노리지 않아도 상관없다, 경제 대국이라고 찬사를 받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다른 나라를 방해하지 않고, 다른 나라에 폐를 끼치지 않는, 그런 깊고 그윽한 몸가짐의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p132 아아, 인민은 어리석어도 정직하고, 항상 앞뒤를 따지며 백년대계를 세운다. 그런데 이에 반하여 오늘날 관리들은, 특히 상급 관리들은 백년대계커녕 일 년 계획도 없이 그저 짧은 한때에 몰두하는 욕심보들뿐이다. 그날그날 자리의 안전을 꾀할 뿐이다. 그러므로 늘 임시변통이다. 인민은 인민의 경험을 믿고 한 걸음도 물러서지 말라. p134 쇼조는 예수의 가르침을 '버리는'일과 '용서를 구하는'일 두가지로 요약하고, 나날이 그 실천에 힘썼다. p143 내가 항상 말하는데, 전 세계 사람들은 물론이고, 날 짐승, 길짐승, 벌레, 물고기, 조개, 산, 강, 풀, 나무에 이르기까지 무릇 이 세상 동식물은 무엇하나 나를 가르치지 않는 것이 없어, 이 모두가 나의 좋은 스승이다.p157 '듣는다'와 '들려준다'의 차이. 이것은 그저 교육의 출발점일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 원리다. 쇼조의 야나카학은 그러한 인간 사회의 진리를 발견하기에 이른 것이다. p161 쇼조는 올해 예순일곱이 될 때까지 무엇을 했는가, 그저 남의 것을 훔지치 않고, 남의 집에 불을 지르지 않고, 감히 사람을 죽이지 않고, 새를 죽이지 않고, 벌레를 죽이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이 있을 뿐, 이루지 못할지언정 사람을 도우려고 하는 됨됨이가 있을 뿐입니다.p162 이 저수 공사가 쇼조가 외친 치수론의 특징 가운데 첫 번째라면, 두 번째는 '수계일관의 사상'이다. 산에서 바다까지, 강상류에서 하류까지 모두 서로 밀접하게 하나로 얽힌 것으로 보고, 물길을 돌보는 일 뿐만 아니라 산을 돌보는 일까지 중시하는 것이다.'치산치수'라고 바꾸어 말해도 좋다. 쇼조는 "숲을 마구 베어 없애는 것은 나라를 스스로 죽이는 행위이다."라고 할 정도로, 물줄기가 시작되는 곳을 돌보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p166 치수는 하늘이 다스리는 것이다. 우리가 능히 잘 다룰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오로지 삼가며 다른 존재(남)을 해치지 않으려고 할 뿐이다. 흐르는 물길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할 뿐. 적어도 흐르는 물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할 뿐, 깨끗하게 흐를 수 있도록 할 뿐, 마을마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서로 이 마음으로 물을 따르면, 물은 기꺼이 바다로 갈 뿐, 우리는 그저 산을 사랑하고, 강르 사랑할 뿐이다.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 이것이 치수의 크나큰 핵심이다. 1909년 9월 24일 p170 산이나 강의 수명은 만억 년에 이른다. 30년이나 50년 전은 산과 강의 한순간이다. 사람의 짧은 수명이나 모자란 지식으로 생각하니 30년이나 50년을 옛날처럼 느끼는 것이다. 산은 천지와 함께 나이를 먹어 왔다. 또한 귀중한 것이다. 신이 아닌 인간의 간섭 따위는 허락하지 않습니다.p183 일본을 보라. 천연을 계발한 것은 없고 되레 천연을 망치는 일에만 급급하다. 그 동안 간신히 물질의 힘을 빌려 조그만 이익을 얻은 자가 많다. 천연이 큰 것을 모른 채, 유한한 물질에 잠시 깃든 힘을 빌려 자질구레한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하다. 그 조그만 이익조차 사사로운 것, 자연이 공공에 베푸는 크나큰 이로움을 모른다. 이것이 지금 현재의 모습.p194 '공공하며 서로 돕고 아끼는 생활'을 통해 지역 자치와 '여럿이 어울려' '두루 행복한' 사회를 이루고자 한다. '자연과 공생'하고 '자연이 모두에게 베푸는 크나큰 이로움'을 최대한 살리는 생활을 실천해 나간다. 이것이야말로 다나카 쇼조의 공공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p224 금요일(14) 하승철 하동 군수와 인터뷰가 있었다. 군수에게 이책을 선물로 드렸다. 재미있을거라 말한다. 같은 길을 가던 가지 않던 같은 정치가로서 이름을 남긴 사람의 족적을 읽는 것은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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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7-15
  • 구례 몸살림운동을 시작합니다
    구례 몸살림운동을 시작합니다 몸살림운동은 내 몸을 바로잡아 건강을 유지하고, 건강한 몸으로 이웃과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운동입니다. 사단법인 몸살림운동본부 만세협동조합(함양) 선생님들이 함께 합니다. - 언제 :집중운동(자세잡기, 교정) 8월 17일(목), 18일(금), 24일(목), 25일(금) 저녁7시 ~ 8시 30분 평시운동8월 31일부터 매주 목요일 저녁7시 ~ 8시 30분 - 어디서 : 그루터기 2층 (구례군 구례읍 봉동길 14) - 모집인원 : 10명 (선착순) - 회비 : 8월 10만원, 9월부터 3만원 * 물어보기 : 010-4686-6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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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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