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1(수)

우리마을
Home >  우리마을

실시간뉴스
  • ♪ 숲(에 나무가 있어야지 골프장이 있냐) 음악회♬
    작년에 구례군 산동면 사포마을 뒷산에서 21만㎡ 너비의 면적의 숲이 사라졌습니다.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부터 지리산 국립공원 경계 인근까지 최소 2만 5천 그루의 나무가 베어졌습니다. 구례군과 시행사는 이 자리에 1000억원을 들여 45만 평 너비의 대형 골프장을 지을 거라고 합니다.골프장 사업을 막아내고 무단 벌목지에 봄을 돌려주기 위해 음악회를 엽니다. 음악회에 앞서 지리산골프장 개발 예정인 벌목지 답사도 준비했습니다.다시 숲으로 돌아갈 날을 위해 음악과 이야기와 마음을 모으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2024년 4월 6일(토)▶ 오후 1시, 벌목지 답사 사포마을회관 (구례군 산동면 사포길 72)에서 시작- 지리산 난개발에 대한 소책자를 읽고나서, 주민분의 안내로 벌목지를 함께 걷습니다.▶ 오후 4시, 숲 음악회사포저수지 옆 공터 (구례군 산동면 관산리 401)♬ 공연자- 오프닝 : 캄캄밴드- 살래 재즈 트리오와 옥수수- 김목인☞ 참가비 20,000 원 이상 (카카오뱅크 3333-11-3005007 이신지원)☞ 주최 : 지리산골프장백지화연대, 지리산방랑단, 동아시아에코토피아포스터배경 사진: @phoma_photo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4-03-18
  • 안개 유감
    「섬진강 편지」 -안개 유감 2023년 10월 22일 안개, 10월 23일 안개, 10월 24일 안개, 10월 25일 안개, 10월 26일 안개, 내리 닷새 아침 안개가 점령군처럼 구례를 장악했습니다. 안개가 옅은 날은 9시쯤이면 걷히지만 독한 날은 11시가 되어서야 해를 볼 수 있습니다. 섬진강과 서시천, 그리고 지리산 골짜기 아래마다 하나씩 있는 저수지들이 봄가을이면 구례를 안개의 마을로 만듭니다. 구례로 이사를 와서 8년이 지나고 나서야 안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구례 사람이면 다 알고 있는 안개의 피해를 모르고 아침마다 안개 예찬론을 펼쳤으니 얼마나 철부지로 보였을까요! 봄, 가을이면 일조량이 현저히 부족하고 습도가 높아 농작물들은 병에 취약하고 강마을 노인들은 기관지, 천식 등으로 고통을 받는답니다. 오죽하면 안개를 피해 산동으로 이사를 가려고 하겠느냐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그런데 최근에 지자체가 유치 신청한 양수발전소가 건설되게 된다면 구례는 그야말로 안개공화국이 되고 말겠지요. 섬진강댐보다 큰 규모의 댐이 2개나 들어선다면 1년 내내 안개에 시달리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거기다가 양수발전에 부족한 물은 섬진강에서 끌어 쓰게 된다니 그렇지 않아도 바닥으로 겨우 기어가는 섬진강물은 더 마를 것이고 가둬둔 물을 흘려보내게 되면 섬진강 하류의 오염은 뻔하지요. 구례는 지리산과 섬진강이 만들어 내는 때 묻지 않은 풍광들이 있어 귀촌자들이 선호하는 지역입니다. 귀촌 인구가 감소 추세인 최근에도 705명(2022년, 구례군 자료)이 귀촌했을 정도로 구례는 3년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나를 포함한 구례지역 귀촌자들의 특성은 주로 자연환경을 중시하는 사람들로 최근 우리 마을에 7명의 젊은이가 이사를 왔는데 다들 구례의 천연 풍광에 매료되어 온 친구들입니다. 진정 애향 애민의 위정자들이라면 국비 1조 원이란 곶감으로 지역민들을 현혹하지 말고 “자연으로 가는 길, 구례”의 본심을 잊지 않도록 고심해야 할 것입니다. 댐이 들어서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잠시만 시간을 내어 30여 년 전에 댐이 건설된 순천 주암댐 주민들의 호소를 들어보시라! "자욱한 안개에 폐암까지"‥주암댐 주민 피해 호소 https://ysmbc.co.kr/article/d4H__7afKF797La-l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3-10-27
  • 노고단(성삼재) 버스 운행시간 안내
    「섬진강 편지」 - 노고단(성삼재) 버스 운행시간 안내 승객이 없다고 운행 중단을 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운행되고 있는 노고단(성삼재) 버스 운행시간입니다. 지인의 운행시간 문의가 있어 정리를 한 김에 자료로 남겨둡니다. 평일에는 오전, 오후 2회 운행을 하고 주말에는 오전 2회, 오후 2회로 총 4회 운행을 합니다. 노고단(성삼재) 버스 운행 시간표 (운행기준 : 2023. 05. 01일부터) 1. 주중 (월~목) 2회 운행 시간표 - 오전 구례터미널 출발 (09:00) 지리산국립공원 화엄사 제1주차장 경유(09:10) 성삼재 출발(10:00) -> 구례 터미널 도착 - 오후 구례터미널 출발 (14:20) 지리산국립공원 화엄사 제1주차장 경유(14:30) 성삼재 출발(15:20) -> 구례 터미널 도착 2. 주말(금,토,일)연휴, 휴가철, 단풍철 - 오전 1차 구례터미널 출발 (08:40) 지리산국립공원 화엄사 제1주차장 경유(08:50) 성삼재 출발(09:30) -> 구례 터미널 도착 - 오전 2차 구례터미널 출발 (10:20) 지리산국립공원 화엄사 제1주차장 경유(10:30) 성삼재 출발(11:20) -> 구례 터미널 도착 - 오후 1차 구례터미널 출발 (14:20) 지리산국립공원 화엄사 제1주차장 경유(14:30) 성삼재 출발(15:20) -> 구례 터미널 도착 - 오후 2차 구례터미널 출발 (16:20) 지리산국립공원 화엄사 제1주차장 경유(16:30) 성삼재 출발(17:20) -> 구례 터미널 도착 *노고단 아침풍경 사진모음
    • 우리마을
    • 지리산 정보
    2023-09-17
  • 구례 성삼재 버스 운행 재개
    5월27일 부터 구례 성삼재구간 버스 운행이 다시 시작 되었다. 운행 중지 되었던 성삼재행 버스가 다시 운행 하기 시작했다. 구례 터미널 첫 버스는 2시40분 성삼재발 마지막 버스는 5시30 분이다. 운행이 중지되어 불편을 격던 등산객들의 불편을 해소 할 수 있게 되었다. 운행시작일 2022.5.27 부터 공영버스터미널 061-780-2730 구례여객운수사 061-782-5151
    • 우리마을
    • 지리산 정보
    2022-05-31
  • 하동의 아동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하동의 아동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교육소멸, 지역소멸을 벗어날 수 없는가 학교를 살리는 것이 지역을 살리는 일이다 하동 지역의 아동 수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2021년 4월 기준 하동군에는 27개의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있으며 18개의 초등학교(분교 포함)가 있다. 초등학교 4~6학년은 716명, 초등학교 1~3학년은 545명,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다니는 5~7세 아동은 329명으로 연령이 낮아질수록 아동 수가 감소하고 있다. 노량초등학교, 진정초등학교, 양보초등학교, 북천초등학교, 화개분교에는 2021년 기준 1학년 입학생이 없으며 묵계분교의 경우에는 2, 3학년 재학생이 없다. 양보초등학교의 경우에는 병설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이가 1명이고 1, 2학년 모두 학생이 없다. 쌍계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의 경우에는 어린이가 한 명도 없어서 2022년에는 휴원이 확정되었다. 아동 감소가 학교와 유치원 감소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악양초등학교 병설유치원, 2021년도 원아 수는 2명이다. 학생이 이렇게 줄어드니 ‘1면 1교(하나의 면마다 하나의 초등학교)’ 원칙이 무너질 위기에 있다. 학생 수 200명이 넘는 하동, 진교를 제외한 다른 초등학교는 대부분 학생 수가 70명이 넘지 않는다. 하동군 내 지역 불균형이 심각하다. 아동 수가 적은 지역의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아이를 1명이라도 보내 학교를 존속시키자는 쪽과 이미 아이들이 줄어들고 있으니 다른 면과의 통폐합으로 조금이라도 큰 곳으로 가자는 쪽으로 의견이 분분하다. 양보초등학교와 병설유치원의 경우, 최근 ‘경남작은 학교 살리기 사업’에 지원하였으나 선정되지 못하였다. 이 사업은 초등학교 자녀를 둔 가구의 이주를 통해 폐교 직전의 작은 학교와 소멸위기 마을간의 상생발전을 도모하는 사업이다. 양보면에 사는 최병용 씨(69세)는 “학교를 살리는 것이 곧 지역 사회 공동체를 살리는 것이고 촌에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였다. “양보에 야구장이 있거든요. 실내 야구연습장까지 잘 갖춰놨으니 좋은 선생님을 델꼬오고, 초등학생 유소년 야구클럽을 만들고, 거기에 살 집을 지어 놓으면 좀 오지 않을까?” 라며 내년에도 공모사업에 지원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또래가 없으면 아동 발달과 교육 환경에 악영향을 준다 아동 수의 급격한 감소는 아동의 발달과 교육 환경에도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첫째, 또래 집단이 없으니 친구 관계를 형성할 수 없다. 또래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니 사회성 발달이 떨어질 수 있다. 둘째, 아동 수가 적으면 교육기관의 돌봄에서 소외될 수 있다. 유치원은 정원이 3명 미만일 경우에 단독으로 돌봄교실을 개설할 수 없다. 이 경우 초등학교 1~2학년과 함께 돌봄이 이루어져 돌봄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셋째, 교육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교원 수는 학생 수에 따라서 결정되는데 학생 수가 적어지면 교원 수도 적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교원 수가 감소해도 행정업무는 줄어들지 않아 업무량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교사가 수업 외로 해야 하는 업무량이 늘어나면 학생들에게 소홀해질 수도 있다. 하동군에 거주하는 20세 미만의 인구 수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자표출처: 통계청(2022년 1월 기준) 하동군 인구통계자료 참조 아동 수가 줄어드는 위기를 자연 속 전인교육의 기회로 삼아야 아동 수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은 교육의 위기이자 지역소멸의 위기다. 그러나 이것은 역설적으로 경쟁교육이나 학력 중심의 교육을 넘어서 도시와 차별화된 자연 속에서의 전인교육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다. 하동이 가지고 있는 기회의 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교육복지를 실현할 교육예산이 충분하다. 교육지원청의 초중고 교육예산 외에 장학재단의 여력도 넉넉하다. 하동군장학재단에는 약 170억 원의 장학금이 예치되어 있으며 올해 예산만 해도 15억 8천만 원이다. 현재 학생 수에 비춰보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둘째, 하동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연과 접하면서 살 수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이다. 도시의 환경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 자연환경을 교육자원으로 삼고 전인교육을 실천한다면 전국의 학부모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 넉넉한 교육예산과 천혜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전인교육을 바라는 사람들이 몰려오게 하면 어떨까. 그 힘으로 지역소멸이 아니라 지역부흥으로 나 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학부모는 물론 교육지원청, 하동군청, 하동군민들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김건해 기자
    • 우리마을
    • 하동
    2022-03-15

실시간 우리마을 기사

  • 함양에 군민의 파수꾼이 떴다!!
    [ 편집자 주 : 함양시민연대가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의 지원으로 지난 7월 함양 의정참여 실천단을 발족시키고 활동을 시작했다. 실천단 결성의 취지와 활동내용 등을 ‘함양군의회 행정사무감사 모니터링 평가 보고서’를 통해 발췌해 싣는다 / 자료제공 - 함양시민연대 ] ○위원장 임채숙 : 그럼 이 내용도 군수님이 알고 있습니까? 오버돼서 이렇게 보수를 한 걸 알고 계세요? ○재무과장 정해문 : 군수님은 모르고 계십니다. ○위원장 임채숙 : 그거 왜 보고를 안 하셨을까요? ○재무과장 정해문 : 어차피 사업을 시행하고 나서 보니까 이거 또 되돌릴 수 없는 부분이라서 그냥 제가 밀어붙였습니다. ○위원장 임채숙 : 그러니까 직원님들이 군수님 눈치 보지 말고 이 법정기준 면적에 안 맞으면 과감히 이대로 지켜주셔야 맞지 않습니까? 타 자치단체에 가면 그렇게 큰 군수실이 많이 없어요, 지금은. 많이 이렇게 좁혔습니다. 그 다음에 호화롭게 하는 것도 없고, 그래서 면적보다 훨씬 크대요, 밖에서 여론도. 그러니까 이 기준면적이 오버된 거는 군수님한테 한번 사실대로 보고를 한번 해보십시오. ○재무과장 정해문 : 예, 알겠습니다. (제8대 -제249회- 제4차 기획행정위원회 2019년 6월 19일 (수) 재무과 소관 업무보고와 질의 답변 中에서) 위의 대화는 함양군의회 기획행정위에서 군수실의 면적을 두고 상임위원장인 임채숙의원이 재무과장에게 질의하는 내용이다. 함양 의정참여 실천단이 의회 회의록을 모니터링하면서 결과보고서에 실은 것인데, 군민들의 의견을 대표하여 집행부를 감시하는 군의원의 모습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와 함께 함양시민연대(대표 임병택)는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의 2019년 하반기 일반공모지원사업에서 ‘함양군 의정참여실천단 프로젝트’로 지원을 받게 되었다. '아름다운재단'과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이 함께 설립, 운영하고 있는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는 지리산권(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 지역사회 안에서 공익을 위한 활동을 확산시키고, 시민사회 생태계가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는 단체다. 몇 해 전부터 함양의 몇몇 시민 단체들이 수차례 의정참여·감시단을 조직하려 했으나, 경험과 전문성의 부족, 방향성의 부재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나 시민연대의 지속적인 관심과 꾸준한 노력을 통해 2019년 7월 30일 18시 30분 함양시민연대 사무실에서 시민연대를 중심으로 함양군 의정참여실천단이 출범하게 되었다. 의정참여, 예산감시 강연회 3차례 개최 의정참여실천단의 설립 취지는 함양군의회의 잘잘못을 따지는 기능을 넘어서 군의회와 협력하여 지방 행정부를 감시하고, 예산이 올바로 쓰일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민연대에서는 세 번의 시민 강좌를 개최했다. 첫 번째 강좌는 ‘의정 참여·감시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2019년 8월 6일에 함양읍 주민자치센터에서 열렸다. 강연자는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의 김정동 사무처장이었고, 강의 내용은 의정 감시와 참여란 무엇이며, 시민 자치를 위한 의정 참여와 감시는 어떠한 방향이 되어야 하는가였다. 두 번째 강좌는 ‘예산 감시 왜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2019년 10월 15일에 함양교육지원청에서 열렸다. 강연자는 공익재정연구소 이상석 소장이었고, 강의 내용은 이상석 소장 자신이 겪은 사례를 중심으로 왜 예산 감시를 해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 예산 감시에 접근해야 하는가였다. 세 번째 강좌는 ‘농민기본소득(농민수당) 도입의 필요성과 실행 방안’이라는 주제로 2019년 11월 15일에 함양교육지원청에서 열렸다. 강연자는 충남연구원의 박경철 박사였고, 강의 내용은 농민기본소득(농민수당)을 어떻게 함양군의 조례로 만들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의정 활동 평가 기준과 방법 함양군 의정참여실천단(이하 실천단)은 2019년 8월과 9월 두 달 동안 자체 세미나를 진행했다. 교재는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가 제공한 ‘2018년 대전광역시의회 의정 활동 모니터링 평가 종합보고서’와 행정안전부,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발간한 ‘지방의회의원 의정활동 가이드’였다. 세미나를 통해 함양군의회의 의정 활동을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는 기준과 방법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세미나와 토론을 거치면서 실천단은 함양군의회의 의정 활동을 평가할 수 있는 큰 틀에 대한 합의를 도출했다. 물론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모니터링팀이 만든 평가 기준과 방법을 많이 수용했다. 그래서 실천단은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의 모니터링 방법론을 공유하되 모니터링을 진행하면서 함양군의 실정에 맞게 조금씩 고쳐 나가기로 결정했다. 군행정과 의정, 지속적으로 지켜볼 것 의정참여실천단이 2019년 함양군의회 행정사무감사 모니터링을 실행하면서 그나마 다행스럽게 느낀 점은, 제8대 의회가 시작되면서 지방의회의 집행부에 대한 견제·감시 기능이 서서히 싹트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의원들 제각각 지방의회의 견제·감시 역할에 대해 견해가 다르고 비중도 다르게 느낄 것이지만, 집행부의 독단적인 행정 행위에 관해서 군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존중하는 방향으로의 변화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종류의 권력이든지 견제와 감시 시스템이 없으면 부패한다. 그런 점에서 집행부에 대한 의회의 견제·감시는 당연한 것이고, 의회와 집행부를 향한 시민 사회의 견제와 감시도 마땅한 것이다. 물론 의정 활동 모니터링을 통해 함양군의회 단 10명의 의원들이 집행부를 견제·감시하는 것이 무척 버겁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방의회 본연의 역할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법이다. 함양군의회 의원들이 2019년 제2차 정례회와 2020년 의정 활동에서 더 나은 모습을 보이기를 기대해 본다. 함양시민연대와 의정참여실천단은 군의회와 함양군 집행부가 자신들의 역할과 책임에 충실할 수 있도록 열심히 그리고 꾸준하게 모니터링을 할 것이다.
    • 우리마을
    • 함양
    2021-06-01
  • 지리산종교연대가 지향하는 세상
    지리산종교연대가 지향하는 세상 노재화 (함양 산들교회 목사. 목사지리산종교연대 사무처장) 종교의 역할이 무엇인가? 코로나 19 시대로 대변되는 기후변화의 위기 시대를 살아가면서 새삼 종교의 자리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 19 상황으로 인해 당연시 여기던 일상이 중지되고 경험하지 못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강제당하고 있다. 점점 더 기후위기가 초래할 수 있는 가상의 시니라오는 현실이 되고 심각해지고 있다. 자연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해 개발하는 일들이 어떤 사태를 가져올 것인지를 증명해 주고 있다. 일상의 전환, 문명의 전환이 피해갈 수 없는 화두가 되었다. 우리가, 인류가 이 지구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류가 살아 온 자본주의적 삶, 화석연료, 핵연료에 의존하는 삶, 자연의 영역을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침범하는 삶의 양태를 바꾸지 않고서는 어렵게 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지금의 삶은 인류가 자초한 일이기에 누구에게 탓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상황은 기존의 사고 인식, 삶의 양식에 큰 변화를 주고 긍정적 경험을 주기도 한다. 종교의 영역에서도 새로운 경험을 통한 기존 전례, 예배 등에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강제 당하는 경험을 굳이 밀어내지 말고 여기서 배우고 새롭게 다시 세우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리산에 산악열차를 놓아 관광수입을 올려보겠다는 지자체의 심산은 참으로 놀부심보다. 자연이 준 아름다운 산하가 있음에도 그대로 누리지 못하고 그 자연스러움에 손을 대 산 위에 철길을 내고 건물을 짓는 다는 것은 욕심이다. 더군다나 그곳엔 인간의 침범으로 사라져간 반달곰을 몇백억을 들여 다시 복원해놓았는데 그들 중 여러 마리가 그곳에서 살고 있다지 않은가! 지금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 돈에 눈이 어두워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문명의 전환, 성찰을 위해서는 인간의 변화, 내적 변화, 정신의 변화, 영적인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 불가능한 것을 절대자의 가르침에 삶과 내면을 반추하며 나약한 의지를 다시 세우고 의지하며 삶을 꾸려 가게 하는 것이 종교의 역할 중 하나다. 이것을 종교는 수행(修行)이라고 한다. 수행이 없는 삶은 깨달음에도, 구원에도, 해탈의 경지에도 이를 수 없다. 지리산종교연대는 지리산권에 깃들어 사는 4대종단(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주교) 성직자, 비성직자 모임이다. 자본에 잠식된 종교가 아닌 절대자의 가르침을 제대로 살아내려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 시작은 1999년에 시작된 지리산댐백지화 운동이었다. 전국에 있는 많은 활동가들과 연대하여 종교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결과는 백지화. 그 이후 지자체장과 국토부의 물관리 정책으로 몇 번 시도했다가 2018년에 이르러서야 완전 백지화 되었다. 이 운동에 참여한 지리산권의 종교인들이 주축이 되어 지리산종교열린연대를 만들었고 지금은 지리산종교연대로 함께 한다. 지리산종교연대의 목적은 단순한 종교간 친목 모임이 아니다. 정관에 보면 이웃과 자연, 공동체를 향한 종교인들의 지향이 잘 나와 있다. 이것에 동의하고 삶에 반영하여 사는 것이 지리산종교연대에 속한 이들의 수행이기도 하다. “ 제2조(목적) 본 회는 지리산권 종교간의 이해와 협력을 통하여, 1. 민족의 영산이자 생태보고의 장이며 동서화합의 장인 지리산의 생태, 문화, 역사, 종교적 환경을 수호하며, 2. 상생조화의 새로운 세계를 열고, 3. 나아가 종교간의 연대를 통해 지리산권 생명공동체 형성을 그 목적으로 한다.” 지리산종교연대는 이것이 절대자의 가르침에 기반한 삶의 지향이고 그것을 실천하며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수행이기 때문에 한다. 특별한 것이 아니라 종교인이라면 본디 관심을 갖고 일상에서 살아내야하는 일인 것이다. 지리산권에서 생명과 평화, 공동체에 관한 일들로 종교인으로서의 역할을 요청하면 웬만하면 거절하지 않는 데 여기에 이유가 있다. 정관 사업에 종교연대가 하는 일이 잘 나와 있다(애용해 주시길) 제3조(사업) 본 종교연대는 위의 목적을 위해 아래와 같은 사업을 한다. 1. 종교간 환경관련 정보교류 및 정기적인 포럼 및 워크샵 개최 2. 지리산권 환경문제에 대한 공동의 입장표명 및 공동대응 3. 지리산권 지역 주민 및 종교와 자치단체에 대한 홍보, 섭외, 조직 사업 4. 지리산 운동에 함께 할 시민, 환경 등 제 단체와의 연대 사업 5. 본 종교연대에서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기타 사업. 2011년부터 지리산종교연대는 생명평화의 염원을 담아 지리산둘레길을 생명평화 천일순례로 종교인들과 여러벗들과 걸으며 기도했고, 세월호 관련 지리산 천일 기도회에 참여하며 노래도 하고 기도를 올렸다. 지리산 좌우대립에 스러져간 이들을 위로하며 생명평화를 기원하는 지리산생명평화기도회를 12년째 이어오고 있다. 지금, 지리산은 지리산댐, 케이블카에 이어 산악열차로 아프다. 자연이 파괴의 위협을 받고 있고 사는 이들은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분열하고 대립한다. 옳고 그름이 흐릿하다. 이럴 때 일수록 명료화가 필요하다. 종교인으로서 상생과 조화를 위해 기도하면서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다. 그리고 기후위기의 시대에서 기후변화에 변화를 가져오는 삶을 만들어가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물음이 떠나지 않아야 한다. 지리산권에 온전한 생명과 평화의 기운이 산하, 마을에 스며들기를 기도하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 우리마을
    • 함양
    2021-06-01
  • 토종씨앗 이야기
    심영지 (함양시민연대) 모든 생명이 움트는 봄이 되면 곳곳에 피어난 색색의 봄꽃에 맘이 설레고, 갈아놓은 논밭을 보며 텃밭 구상이 시작된다. 서울 생활의 삭막함을 덜어보고자 집 앞 상자텃밭으로 시작해 매년 텃밭농사를 해온 게 어느덧 3년. 첫해는 종자상에서 모종을 구입해 심었고 이듬해에는 생에 처음으로 씨앗을 땅에 심어 보았다. 생각보다 만만찮았다. 이 작은 씨앗을 심어 뭐가 나겠나 싶기도 했고 여러 풀씨들과 함께 심겨서 그런지 싹이 올라올 때면 뭐가 뭔지 구분하기도 어려웠다. 그중에 살아남은 씨 몇 알이 힘차게 올라와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보며 생명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적은 수확물이었지만 정성껏 요리해 사람들과 나눠먹으면 그게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내가 키운 토마토야.”에 깃들어 있는 자부심이란. 사실 내가 키웠다기보단 하늘과 땅이 키워낸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그 ‘맛’에 매료되어 자연히 씨앗까지 관심이 갔다. 매년 씨앗과 모종값으로 나가는 돈이 만만찮기도 했고 파랑, 노랑 묘~한 색깔로 도포된 씨앗이 과연 ‘진짜’ 씨앗일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다. 그렇게 씨앗 공부를 하다 보니 씨앗 한 알에 담긴 의미와 중요성을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토종 씨앗이란 뭘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에서는 토종 씨앗을 ‘토착화 된 종자, 형질이 고착화되어 매년 안정적인 수확량이 나오는 것이 검증된 씨앗’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원산지가 어디인가, 얼마나 오랫동안 심어왔는가라는 측면을 뛰어 넘어서 우리 땅과 기후에 적응해 지속적인 생산이 가능한 씨앗을 토종으로 보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에서 토종씨앗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단체인 ‘토종씨드림’ 대표가 쓴 책 ‘토종 농사는 이렇게’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나는 토종 씨앗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외래종을 토착화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 몇 년 전, 20년 동안 다마금을 재배했던 농부가 다마금이 재래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씨앗을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또 다른 배타적 토종주의로 흐르는 것에 경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종자인 다마금이 100년 동안 한국의 토양에서 적응되었다면, 당연히 토착화된 씨앗(토종 씨앗)이 아니런가? 식물의 경우 30년 정도만 지나면 토착화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중략) 내가 여기서 토종을 강조하는 것은 배척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식량 주권’과 ‘잃어버린 씨앗’을 되찾기 위한 점임을 밝혀 둔다.” 위태로운 토종 씨앗의 자리 토종 씨앗은 올해 수확하고 이듬해 심으면 다시 싹이 트고 열매가 맺힌다. 씨앗 안에 생명력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종자회사에서 판매하는 씨앗은 불임종자가 대부분이다. 1회용 씨앗이기 때문에 농민은 이듬해 또 다시 씨앗을 구입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씨앗을 사는 것일까? 이 씨앗은 생산물의 크기가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 수확량 중심으로 개량된 종자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토종 작물은 농민이 선호하는 모양과 맛에 따라 선택되어 왔다. 그러기에 농가마다 가지고 있는 씨앗이 달랐고 그만큼 다양성이 확보되었던 것이다. 종이 다양하다는 것은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전염병이나 자연재해가 발생하더라도 일부 품종은 살아남아 먹을거리 공급의 안정성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한국은 종자의 80% 이상을 다국적 기업에서 공급받고 있다. 예를 들어 청양고추는 외환위기 때 우리 청양고추 종자 로열티가 독일 바이엘에 넘어갔다. 바이엘에서 청양고추의 가격을 올리면 우리는 그 값을 치르면서 씨앗을 들어와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갈수록 기업들의 독점은 더 심화되고 있고 이들이 종자가격을 올리면 현재의 소농들은 파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기업이 종자를 독점해 세계인의 생명권을 쥐고 돈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토종씨앗의 자리가 위태로워진 만큼 우리 밥상 또한 안전하지 않다. 우리의 식탁에 올라온 식재료의 78%는 농약과 방부제로 샤워를 한 수입 농산물이 장악하고 있고 가공식품의 원료로 gmo 품종이 유통되고 있다. 나도 모르게 gmo 식품을 섭취하고 있는 것이다. 유전자조작생물, gmo는 과거 고엽제를 제조한 화학기업 ‘몬산토’가 최초로 개발했다. 이 곳의 과학자들은 화학물 폐기장에서 제초제에 범벅이 된 채 살아남은 박테리아를 발견했다. 이것을 유전자에 삽입해 1996년 상용화한 gmo 콩은 강력한 제초제를 흡수해도 죽지 않고 자랐다. 우리가 먹는 gmo농산물의 시작이다. gmo 작물 외에는 모든 생물을 죽일 수 있는 제초제. 이 안에 든 ‘글리포세이트’라는 물질은 작물의 세포까지 흡수되어 씻어도 사라지지 않고, 냄새도 맛도 나지 않는다. 사람이 섭취하면 몸에 축적되어 불임, 기형아 출산, 암 발병의 원인이 된다. 이미 세계보건기구(who)는 2015년에 발암 가능 물질로 분류했지만,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연간 8억톤이 쓰인다고 한다. 또한 한국은 식용 gmo 수입 1위국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된장, 간장, 식용유, 과자 등 가공식품의 원재료를 살펴보면 70%가 수입산이고 그중 80%가 gmo다. 하지만 우리는 gmo를 먹고 있는지조차 잘 모른다. gmo표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시민단체에서 ‘gmo 완전표시제’ 시행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의 방관과 기업의 반대에 가로막혀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토종씨앗을 지키고 되살려온 사람들 예로부터 씨앗은 나눔을 통해 이어져 왔다. 한 해 농사를 갈무리하고 나온 씨앗 중 좋은 것은 이웃에게 나누고 자식들을 통해 대물림되었다. 나눔의 속성을 간직한 씨앗, 하지만 이 씨앗이 팔아넘겨지면서 씨앗을 매개로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독점된 씨앗은 생명력을 잃어버렸다. 씨앗의 원래 자리는 어디일까? 바로 농민들의 손에서 손으로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이에 세계 곳곳에서 농민들은 다시 씨앗에 대한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토종 씨앗의 중요성을 인식한 농민, 환경과 관련된 단체들이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다. 단체로는 토종종자모임 씨드림, 흙살림 토종 연구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을 꼽을 수 있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을 중심으로 한 여성 농민들은 토종종자와 생태농업을 기반으로 한 ‘꾸러미사업’과 ‘언니네 장터사업’을 시행했고 올해로 10년이 되었다. ‘만원의 행복’ 사업은 특히 토종씨앗을 지키고 활동하는 것을 지원하는데, 1만원의 기금을 내면 가정이나 텃밭에서 심을 수 있는 토종씨앗 3가지를 보내준다. '토종씨드림'은 2008년 단체와 개인으로 결성된 비영리 단체로 현재 토종씨앗 수집을 가장 활발히 하고 있는 곳이다. 현재 온라인 카페의 회원 수가 1만 5천여 명에 이르고 41개 지역에서 지역별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다. 경남지역에서는 거창, 진주, 하동에서 씨앗 수집조사가 앞서 시행되었고, 함양은 올해 2월, 백전면을 시작으로 씨앗 수집조사의 첫 발을 내딛었다. 씨앗은 보관만 하면 그 생명력을 잃어버린다. 계속 땅에 심어져 싹이 트고 한 생을 정직하게 살아내야 한다. 지금껏 토종 씨앗이 이어왔다는 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생업에 종사하면서 씨앗을 지키고 대물려온 농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농민들은 씨앗을 거둬들이는 수고스러움을 마다 않고 어떤 이유로 지금껏 토종 씨앗을 지켜왔을까? 씨앗 수집조사를 다니면서 알게된 사실은 대부분 ‘맛’이 좋아서였다. “자식들이 이 맛을 좋아해.” “시장에 파는 거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고소해.” 그러면서 이제껏 농사 지으신 이야기, 자식들 이야기, 고단했던 당신의 삶의 이야기까지 들려주신다. 씨앗과 함께 흘러온 세월이 그 분들의 굽어진 허리만큼이나 숙연하게 느껴진다. 매년 고령의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서 토종 씨앗도 함께 사라지고 있고, 토종작물이 우리의 밥상까지 올라오기에는 많은 현실적 한계들이 있지만 한 알의 씨앗이 있으면 희망이 존재하듯 대를 이어 우리의 전통지혜가 씨앗과 함께 물려지고 되살아나길 바래본다.
    • 우리마을
    • 함양
    2021-06-01
  • 코로나 바이러스19 그리고, 지리산 순례
    코로나 바이러스19 그리고, 지리산 순례 2020 지리산둘레길 평화순례단 이모저모 윤인섭 (사단법인 숲길) 이번 평화순례단은 외부 지원 없는 순수한 참가비로 12박 13일의 일정으로 250km의 ‘지리산둘레길’을 이어 걸었다. 코로나로 해마다 순례단을 운영하는 5월에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참가인원은 10명 정도 소규모로 조용히 진행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촉박하게 진행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19의 영향일까? 지리산둘레길 홈페이지에 모집 공고가 나가자 짧은 기간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접수를 했다. 코로나 이후 생태적인 관계회복이 무엇보다 필요하며, 자연과 더불어 걷는 여행은 무엇보다 확실한 바이러스 백신이라는 것 새삼 확신을 갖게 된다. 13명으로 구성된 2020년 지리산평화순례단. 20대 초반에서부터 60대 후반까지 다양한 세대로 구성되었으며 전국 각지에서 서로 다른 환경에 살다가 한 가지 목적인 지리산순례를 하겠다는 분들. 각자가 가지고 가고자하는 목표가 있었기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내 안의 모습을 바라보는 순례’를 시작했다. 하루 평균 20km이상을 걸어야하는 다소 개인에게는 무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렸다.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모였으며, 순례단 합류를 앞두고 걷는 연습을 많이 했다는 분, 걷기 전문가 수준으로 몸을 만들어 온 이도 있다. 5월 18일, 참가자들이 모여 ‘지리산둘레길이 만들어진 과정이 지리산을 잘 가꾸고 지키자는 뜻’ 이었다는 것을 알려 드리고 마을의 동의가 있었기에 ‘지리산둘레길’은 가능했고, 그것들을 이해하는 과정이 ‘지리산평화순례단’이기도 하다는 취지에 공감하신다. 순례단은 숲길에서 한 사람의 진행자(단장)가 참가하고 모든 역할은 순례단 참가자들이 결정해서 진행하기로 하였다. 순례단 소임을 리더, 기록, 정보안내, 의료, 메신저로 나누고 돌아가며 역할을 맡기로 했다. 먼저 역할을 맡겠다는 지원자를 선정하고 지원이 없을시 단장의 권한으로 지명을 하는 것으로 했다. 리더는 순례단을 이끄는 대장 역할로 걷는 길을 인도하고 휴식과 간식시간, 점심식사 시간 등을 정하여 대부분의 진행을 결정하는 역할을 하고, 기록은 사진촬영과 나눔 시간에 나온 내용을 기록 정리하며, 정보안내는 밥 먹고 잘 곳에 순례단의 위치와 시간 등을 알라는 알림이, 의료는 걷는 동안이나 걸고 난 후 단원들의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역할이다. 메신저는 하루 동안 불편한 부분이나 말 못할 사연이 있을시 그것을 받아 나눔 시간에 토론을 하는 진행자가 되는 역할이다. 각자가 돌아가면서 한 두 번씩 역할을 맡아 외부 개입 없는 스스로 참가한 순례자간의 신뢰와 신의가 바탕이 되는 자발적 그룹 순례문화를 목표로 정했다. 해마다 ‘지리산평화순례단’을 이어가며 지리산의 마음을 믿고 해 왔으니 순례단과 지리산을 믿고 열악하고 부족한 조건들을 뒤로하고 한 걸음 한 걸음, 하루하루를 걸었다. 순례단장은 순례단원이 역할에 충실하게끔 격려와 칭찬을 하고 평화순례의 취지와 맞지 않을 때(부정적 기운이 감돌 때)만 간섭하는 것 외에 전체 진행은 순례단에게 맡겼다. 스스로 진행하며 상대방의 역할과 자신의 역할이 상호작용하고 있고 배려와 격려가 순례단을 움직이게 된다는 과거의 사례를 들려준다. 또 기왕에 순례란, 이름을 붙인 걸음이기에 의례적인 활동을 한다. 매일 아침 시작 전 ‘생명평화백배절명상’음원을 들으며 절을 올렸다. 종교적 이유로 부담이 된다면 앉아 있거나 자기 신념대로 기도해도 된다고 알려 드린다. 평화순례를 시작하면 3~5일간은 다리 근육통과 물집, 그리고 피로도가 높아 상대방의 언어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상호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아 갈등이 일어난다. 자신의 몸이 고통으로 응답하는 시기이다. 스스로 세운 목적을 잃고 포기하고픈 마음이 생긴다. 이 단계를 넘기면 그리고 대다수 동료들이 있기에 이 과정을 잘 넘긴다. 혼자서는 못하지만 함께한 이들이 있어 걸을 수 있고 순례단원들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2020 걷기여정) 평화순례단 13명은 5월19일 아침에 순례자의 약속을 하고 산동에서 밤재를 지나 주천까지 15km내외로 걸었다. 외평마을회관을 숙박지로 사용하다보니 주천면사무소에서 ‘코로나19로 인해 단원들의 개인정보와 체온측정까지 해서 기록지를 제출해 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둘째날 역시 비전마을회관에서 숙박을 하다 보니 또 한번 이장님께 체온측정과 개인정보를 기록해서 제출한다. 숲길이나 임도길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고 걸었으나 마을입구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짐을 풀 때 마스크를 벗는다. 4일간은 15km내외로 워밍업을 하고 5일째부터는 20km이상 걷다 보니 아침 7시에 출발하여 오후 5시가 넘어야 걷기 여정이 끝난다. 3~4개의 고개를 넘고 중간 중간 개울이나 물이 있으면 신발을 벗고 열불나는 발을 식히고 콘크리트, 아스팔트 길을 다시 걷는다. 리더와 정보, 메신저는 매일 바뀌고 기록과 의료는 고정으로 맡게 되었다. 리더 역할이 바뀌면 맡은 이의 성향이 파악되고 서로가 이해하는 계기가 되고 선두와 후미의 어려움을 알게 되어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깊어지게 된다. 그 와중에도 물집의 정도가 심각해서 포기하는 단원과 순례걷기의 의미가 퇴색되었다며 홀로걷기를 자처하는 단원이 생겨 2명의 순례단원이 중도포기를 떠나는 아픔을 맛봤다. 매일 연속되는 20km이상의 걷기로 불평과 불만이 생기지만 박카스와 믹스커피 그리고 판콜 에이를 먹어가며 “천천히 가면 히말라야도 간다”고 외치며 높은 재, 달궈진 길을 뚜벅뚜벅, 삼삼오오 서로 격려해가며 무사히 하루를 이겨낸다. 생기 있고 서늘한 오전시간은 묵언수행으로 생각을 정리하며 걷고, 지치고 더운 오후 시간에는 서로에게 관심을 두고 공감하며 힘든 길을 서로 격려하여 걷기를 마무리한다. 매일 저녁시간 나눔 시간에는 다음날 일정과 공지사항 및 역할 소임자를 뽑고 서로 칭찬하며 하루를 마무리 한다. 순례 마지막 날, 각자가 알아서 목적지까지 어떠한 방법으로 가던 상관없이 오후1시까지 목적지에 도착하기로 결의하여 각자가 하루를 스스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며 ‘2020 지리산평화순례단’의 일정을 마무리 했다. 늘 그렇듯이 함께 해주신 분들 모두가 지리산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는 말씀, 많이 받고 간다고, 고맙다고 하신다. 올해는 유난히 마음 조리며 진행한 평화순례단이다. 마을은 외부인에게 극도로 긴장하고 있고, 혹시 모르는 불안한 맘을 안고 진행한 순례단, 마치면서 역시 지리산의 품은 따뜻하고 넓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다시 자연을 벗 삼아 뭇생명이 공존하는 날을 꿈꾼다. 2020순례단에 참여하신 모든 분, 이 분들을 따뜻하게 맞이하신 지리산사람들에게 감사드립니다.
    • 우리마을
    • 남원
    2021-06-01
  • 사회적 기업 - “자전거창고 협동조합”의 양성일 님
    사회적 기업 - “자전거창고 협동조합”의 양성일 님 정 태 연 (섬진강여행연구소(준) 대표) 구례읍에서 문척교를 건너 섬진강을 따라 861번 지방도로를 타고 하동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남도대교가 가까워질 무렵 오른편 언덕 위로 쌔뜩하게 빨간 컨테이너 건물이 보일 것이다. 저게 뭐하는 건물일꼬? 라는 의문이 드셨다면 알려드리건대, 이 곳이 바로 섬진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라이더들의 聖地(?)가 되고픈 ‘자전거창고 협동조합’ 되시겠다. 국토종주 라이딩을 하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섬진강 종주의 경우 바로 남도대교 근처에 인증센터가 있고, 전체 140여km의 3/5쯤 되는 거리에 위치한 이 곳은 하룻밤 중간기착지로도 적당한 곳이어서 1박을 하면서 애마를 정비하고 몸을 쉬어가기에 맞춤이라고 하겠다. 이 곳에서 올 봄부터 영업을 시작한 자전거창고 협동조합의 양성일 대표를 만났다. 구례와의 인연은? 아버님께서 40년쯤 전에 구례(이 곳 운천리)에 자리를 잡으셨고, 할머님과 어머님도 30년 이상 구례에 거주하셨다. 서울에 살 때는 H라는 유명한 회사에 다니다가 IT강사로도 7년 이상 활동했는데, 2007년에 구례로 내려와 농사를 짓기 시작. 집 앞, 섬진강을 따라 자전거도로가 점차 활성화되는 걸 보며 자전거를 빌려주고 정비하는 사업을 구상했다고. 2018년 광주대학교의 사회적기업지원센터와 인연을 맺고 사회적경제기업으로 창업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영리사업체라는 편한 길을 두고 그는 왜 굳이 그런 경로를 선택했을까? 그의 희망을 물었다. 음... 일단 저희는 정비와 수리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인데요, 이 걸 구례읍내나 하동, 광양의 자전거 수리업체 등과 연계하여 네트워크화한다면 일감이나 고용을 창출하는 데 서로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특히 지방(관광)형 공유자전거 프로젝트(예를 들면, 서울의 따릉이처럼)를 실현해가고 싶습니다. 구례에서 하동, 광양까지 베이스를 확충해서 전기자전거를 누구나 빌려 타고 반환하는 사회적 경제시스템을 만들고 싶어요. 특히, 이 곳 섬진강 자전거길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어서, 지난 번 아이언맨 행사 때 왔던 외국인 선수들조차 세계적으로도 멋진 코스라고 엄지손가락을 세울 정도니깐요. 그런 하드웨어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 자전거교육사업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실상 요즘은 어른이나 아이들 모두 자전거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 친환경적인 교통 및 레져수단으로서의 자전거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절실하다고. 그래서 구례읍내의 학교들과 연계해 자전거를 올바로 배우고 타는 프로그램을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자전거가 구비되어 있는 용방초 아이들과 올 해에 처음으로 자전거마라톤도 했었다고. 오호, 멋진 걸?? 자전거가 전시된 모듈 위로 건물들도 들어서 있다. 게스트하우스가 두 동이다. 자전거 라이더들을 대상으로 숙박서비스(동별 10명 안팎)를 제공한다는. 향후 메인건물이 들어서면 구례의 사회적 기업을 창업하고 운영하는 사람들+라이더들의 회의 및 쉼터, 문화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을 거라며 소박한 웃음을 터뜨리는 그의 최종목표는 북한까지 자전거시스템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세상에나. ◾ 구례군 간전면 남도대교로 99-5 / 010-5060-6321(양성일 대표)
    • 우리마을
    • 구례
    2021-06-01
  • 사라져가는 것들을 위하여
    자야 타고난 무기력과 학습된 책임감 모두를 사랑하는, 성실한 귀차니스트. ‘슬렁슬렁 토종텃밭’ 연재를 통해 함양에서 토종씨앗을 심고 거두는 이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전해드리려 합니다. 채울 수 없는 빈자리 지난겨울 내내 굴착기 5대가 땅을 파고 바위를 쪼고 돌과 모래를 트럭에 실어 나르는 소리를 들으며 살았다. 공사장이 집과 아주 가까운 거리는 아니어서 소음이 일상에 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우면 일정한 간격으로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약한 진동이 척추를 타고 흐르는 게 느껴졌다. 일주일에 서너 번 대문 밖을 나서는 날에는 신경이 더 날카로워졌다. 두 눈을 감지 않고서야 공사장의 살벌한 풍경과 마주하지 않을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마을을 건너다 볼 때, 혹은 버스에서 내려 마을을 향해 걸어 들어갈 때, 나는 더 이상 ‘우리 동네’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나 설렘이 내 속에 남아 있지 않음을 깨달았고, 그러면 괜히 부아가 치밀어 올라 발부리에 채는 돌멩이에게 화풀이를 하곤 했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바야흐로 봄이다. 제법 높았던 언덕 하나가 쪼개지고 허물어진 자리에는, 이제 굴착기 5대 중 2대만 남아 ‘조용히’ 마무리 작업 중이다. 이로써 내가 지난 십 년간 수백 번은 족히 오르락내리락했던 언덕과 산책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동네에서 사라지는 것이 그 뿐만은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고령의 어르신들, 특히 혼자 사시던 할머니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몇 분은 이미 세상을 ‘베렸고’, 몇 분은 도시 어느 요양원으로 옮겨졌으며, 남은 분들의 바깥출입도 예전 같지는 않다. 몸 상태가 괜찮을 때도 워낙 그림자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던 분들이어서인지, 할머니들의 사라짐은 매우 뒤늦게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일단 그 분들의 부재를 알아차리고 나면 그 빈자리는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다. 동사 앞 느티나무 아래나 좁고 고불고불한 밭고랑, 혹은 골목길 모퉁이에 주저앉아 순하게 웃고 계시던 분들이 없기에, 같은 공간이 더 이상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이해가 될까? 오래된 기억 속 이야기를 만나다 요즘 <함양토종씨앗모임>에서는 백전면 마을을 돌아다니며 할머니들을 만나고 있다. 목적은 그 분들이 오랜 세월 뿌리고 거두길 반복해온 토종씨앗의 종류를 파악하고 수집하는 것인데, 막상 볕 잘 드는 툇마루에 할머니와 마주앉으면 씨앗도 씨앗이지만 갈피갈피 눈물이 배어 짭짤해진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시집 올 때 지곡에서부터 백전 꼭대기에 자리한 백운마을까지 함박눈을 맞으며 하루 꼬박 걸어온 사연이며, 산에서 싸리나무를 직접 ‘비다’ 가마솥에 푹푹 삶아 껍질 벗겨 말려서 채반과 빗자루를 엮은 이야기며, 또 바깥양반 일찍 보내고 홀로 자식들 키우느라 온몸이 부서져라 일을 했건만 정작 남은 건 병들고 고독한 삶뿐이라는 한탄 같은 것들. 어느 할머니는 시집 와 한 집에서만 50년 넘게 살아온 사연을 들려주신 끝에 혼잣말처럼 이렇게 중얼거리셨다. “이제 집도 나도 망가지삐렸어.” 이른 아침부터 한나절을 돌아다녀도 농사지을 기력이 남아 있는 할머니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고, 그 중 토종씨앗을 보유하고 있는 분은 더 드물다. 그래도 70세 이상 할머니라면 최소한 토종씨앗에 대한 ‘기억’을 품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않은가. 묵은 기억들을 헤집어 ‘손바닥 만했던 맨드라미꽃’의 화사함과 시어머니 생전에 심었던 ‘송아리 큰 서숙(조)’의 풍성함, 메주 쑤어 장 담그면 일품이던 ‘토종 흰콩의 다디단 맛’을 묘사할 수 있는 분들이 남아 있다는 게, 정말로 고맙지 않은가. 그래서일 것이다. 가져간 씨앗 자루는 비록 헐렁해도 가슴만은 꽉꽉 채워 돌아오게 되는 이유는. 내 마음에도, 봄 제아무리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고 공사장 소음이 끊이지 않는다 해도, 무너진 언덕과 흙길에 더 이상 정붙일 곳이 없어졌다 해도, 어느새 꽃향기는 진동하고 겨울잠에서 깨어난 생명들은 아우성을 치며 할머니들의 더운 숨결이 사라진 자리에선 노란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말하자면 살풍경한 우리 동네에까지 봄이 깊숙이 들어와 있다고 할까. 그러고 보니 겨우내 잔뜩 심술이 나 있던 내 마음도 조금은 말랑해진 듯하다. 언젠가는 희미해질 기억,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는 이야기, 이미 상당 부분 소실된 토종씨앗을 전부 제 속에 간직하고 있는 분들을 만나는 가운데, 나는 그렇게 온기를 되찾아간다. 서서히, 조금씩, 어쩌면 나는 할머니들을 닮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우리마을
    • 함양
    2021-06-01
  • 지리산생명평화 기도회, 그 열 번째
    지리산생명평화 기도회, 그 열 번째 “그들을 기억하는 작은 기억장소 만드는 게 소망” - 서동석 전 산청군의원 “한반도 평화 위한 제언, 시민사회 적극성 보여야 ” - 이부영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 이상윤 (사단법인 숲길 상임이사) 지난 6월 25일, 열 번째 지리산생명평화기도회가 열린 곳은 경남 산청군 시천면 외공리 소정골. 이 곳에는 1951년 2월~3월 초순 어디선가 끌려온 남녀, 어린아이를 비롯한 사람들이 카빈소총을 맞고 죽은 주검이 무더기로 발굴된 곳이다.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을 했던 서봉석씨(전 산청군의원)에 따르면 “그 때 유골을 수습하면서 유전자 감식절차를 밟지 않은 게 한스럽다.”고 한다. 수백 구의 유골을 수습하면서 유전자 보존을 해 두라는 주변의 권고가 있었지만 막대한 예산 때문에 할 수 없었다는 것. 이 곳에서 수습된 사람들은 어디서 어떤 이유로 끌려 왔는지 모른다. 그래서 유전자 감식을 하지 않았던 게 더욱 가슴 아픈 일. 이날 기도회에 증언을 하러 나온 서씨는 비록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이 곳에다 작은 ‘희생자 기억 장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유골 발굴은 진주청년회와 순천청년회에서 진행했으며, 그동안 발굴 묘역 주변을 가꿔온 분이 있었고 지금은 산청지역시민사회단체가 위령제를 올리고 있다. 2008년의 발굴 기록을 보면 6기의 대형 무덤을 찾아 조사했으며, 250여구의 시신을 수습하고 유류품으로 카빈총 탄피, 옷, 단추, 지퍼 등 의류와 숟가락, 유리조각, 비녀 등 소지품이 나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카핀 탄피가 발굴되어 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로 추정되고 있다. 외공리 소정골 민간인 학살을 목격한 마을 분은 돌아가셨고 학살 가담자의 양심선언으로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서봉석씨의 바램은 이뤄질 수 있을까! 유골 수습 당시 20대로 추정되는 유골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 서씨는 “총알 수와 수습 유골 수가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특수부대가 투입된 것처럼 훈련된 사람들에 의한 학살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리산생명평화기도회는 6.25를 전후해 지리산 5개 시⋅군을 돌며 전쟁을 평화로 기억하기 위한 추모와 평화를 기원하는 의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날은 지리산종교연대를 비롯하여 시민사회단체 회원, 산청지역 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하여 지리산종교연대 소속의 4대 종단이 바치는 합동기도문 낭송과 성요한 신부(성공회)의 노래, 다 함께 새 날을 다짐하는 합창 순으로 진행되었다. 2004년, ‘지리산 생명평화 탁발단’은 이 곳에서 위령제를 올리고, 지리산으로 찾아온 비극적인 한국전쟁과 마을까지 덮친 전쟁의 참상들을 기억하고 스스로가 평화가 되자는 다짐을 했었다. 외공리 소정골의 아픈 기억을 간직하기 위한 ‘기억의 공간’ 마련을 위해서는 지리산권 시민사회진영이 먼저 이를 추진할 방법을 주민들과 함께 제안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2019년 6월 외공리, 지리산 생명평화 기도 1951년 겨울과 봄 사이, 이 곳 외공리 소정골에서 무참히 죽어간 영령들이시여! 군인들 총부리에 찔려가며 이곳 소정골로 쫓기듯 올라올 때, 얼마나 무섭고 무서웠습니까. 솥단지 나뒹굴고, 갓난아기 베개며 옷가지들, 어지럽게 흩어지고, 장정은 물론이고 어린 것들의 울음소리, 부녀자들의 울부짖음, 숨소리 헉헉거렸을 노인들까지... 길에 새겨졌을 두려움과 공포는 상상조차 너무 힘이 듭니다. 탕!탕!탕! 총소리에 내 가족, 내 이웃, 그리고 낯선 누군가가 쓰러져갈 때, 심장은 이미 멈추었고, 공포에 휩싸인 혼백은, 날아가지도 흩어지지도 못한 채, 그대로 얼어붙었겠지요. 얼음 박힌 차가운 땅으로 떨어질 때, 세상은 또 얼마나 아득한 심연의 낭떠러지였을까요? 여름이 왔어도 여전히 겨울인 여기 이 땅. ‘따뜻한 햇볕 한 줌’ 바치는 마음으로, 우리 이렇게 서 있습니다. 부디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이고 편히 쉬소서. ‘이제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숨을 길게 내쉬어 보고, 이 자유로운 바람소리도 느껴보시고, 평화로운 풀과 꽃의 향기도 흠뻑 들이키소서. 그렇게 기운 차리소서. 마침내 <생명평화 민족화해>의 길에 생명평화의 꽃으로 부활하소서. 세상의 모든 관계를 조화와 균형으로 이끄시며 세상의 자유와 평화를 세우시는 님이시여! 휴전선의 철조망은 여전히 견고하고, 자신들의 이익에만 목마른 주변국들도 그대로입니다. 우리 사회의 적대적 갈등에서 우리는 여전히 두려움과 공포의 골짜기를 봅니다. 이러다가 온 나라가 그대로 외공리 소정골이 될까 두렵습니다. 토벌대 아들과 빨치산 아들을 둔, 지리산 어머니의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전쟁은, 서로 돕고 살아야 할 사람들을 짐승이 되도록 내모는 것입니다. 부디, 이 땅의 국민들이 전쟁의 광기와 아픔과 상처를 똑똑히 기억하게 하소서. 좌우이념을 떠나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는 깊은 연민과 지혜를 갖게 하소서. 온 나라가, 너와 나 모두를 살리는 해원상생의 길을 걷게 하소서. 생명이 안전한 사회는, 좌우가 따로 없는 온 국민의 소망입니다. 성인들이 말씀하신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세상입니다. 전쟁은, 하느님, 부처님, 모든 성인들이 간구했던 하느님나라, 부처님나라, ‘인간’과 ‘공동체’를 포기하는 것이며, 생명평화는, 우리 모두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다른 이름이니, 부디, 이 생명평화의 길에서 저희들이 그 증거가 될 것을 간절히 다짐하고 다짐합니다. 정전 66년, 2019년 6월 25일 생명평화 민족화해를 간절히 바라는 지리산 사람들의 마음을 담아 지리산 종교연대 / 지리산생명평화기도회 참가자 함께 올림 지리산생명평화기도회는 1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소정골 추모행사에 이어 시천면 덕천서원에서 ‘지리산, 생명평화의 세상을 꿈꾼다’는 취지의 이야기 마당을 펼쳤다. 이 날 이야기 마당은 이부영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의 ‘한반도 주변정세와 시민사회의 역할’, 도법 스님의 ‘평화와 우리 안의 정상회담’ 발제와 참여자들의 이야기 마당으로 꾸며졌다. 다만, 이 날 참석하기로 한 이부영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은 서울에서 벌어지는 긴급현안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그는 발제문에서 ‘국내 정치현실이 극단의 대립을 반복하는 이념 대결의 단초를 한국전쟁’으로 보고, 이미 국제질서는 국가이익 대결구도로 전화되었지만 우리의 정치현실은 여전히 탈냉전의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폐단이 지속되는 것은 정치제도를 제대로 바꾸지 못하는 1987년 체제의 고착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만든 제왕적 대통령제도와 1987년 소선거구제 국회의원 선거법은 완전히 떡시루 네 쪽 쪼개듯 지역분할 구도를 만들어냈고, 이는 주로 영호남 대결구도로 고착화되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지역구도가 완화되었다고는 해도 영호남 구도를 유지하는 쪽으로 작동되고 있다.”며 “대통령의 권력을 대폭 국무총리와 내각으로 이양하는 분권형으로 바꾸고, 선거법도 연동형비례대표제와 석패율을 도입하여 어느 한 지역에서 특정정당이 독식하는 현행 제도를 바꾸자는 것”이라 밝혔다. 북핵 위기의 시발은 “1990년대 탈냉전시대를 맞이하여 남북한 동시 유엔가입과 남한과 러시아, 중국의 국교정상화는 이뤄졌지만 미국, 일본이 북한과의 국교수립을 거부했기 때문”으로 봤다. 북핵 위기가 부각되고 “더욱이 중국의 놀라운 경제발전이 지속되면서 일본의 이른바 ‘잃어버린 20년’ 경제침체가 계속되자 일본사회의 급격한 우경화를 가져왔고, 그 결과 자민당의 아베 극우세력이 집권하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지리산생명평화기도회를 맞아 북미, 남북 정상회담이 조속히 열리길 기대한다는 이부영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 남북관계의 자율성 축소로 북한정권의 한국정부에 대한 신뢰가 저하됐고 * 비핵화 교착 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한국정부의 동력도 약화되었으며 * 결과적으로 한국정부의 중재역량이 현저히 약화되었다며, 앞으로 북미 비핵화 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1) 비핵화 진전을 위한 4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고 2) 미국의 전략적 판단 오류를 막기 위한 다방면의 대미 공공외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미국의 의회, 정부, 싱크탱크에 널리 퍼져있는 대북협상 무용론, 특히 군산복합체의 북핵폐기불가능론을 잠재우는 일이 필수적이다. 한국의 극우세력이 미국내의 협상무용론을 부추기고 있다.”고 했다. 시민사회에 대해서 이부영 위원은 “비핵화 협상과 한반도 평화를 반대하는 세력의 활동은 점점 강화되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 협상을 지지⋅성원하는 시민운동은 오히려 위축된 모습”이라며 “시민사회에서 평화운동과 남북교류협력운동이 좀 더 적극성을 드러내보여야 할 때이고, 미국의 태도가 한국정부의 자율성을 압박하는 자세를 보이면 그 부당성을 지적 시정하도록 미국대사나 스티브 비건 대표 등을 만나 항의하는 의사를 표시할 필요가 있다”고 내다봤다.
    • 우리마을
    • 산청
    2021-06-01
  • 지리산 숲속에서 불편한 실험을 시작하다
    감자 (지리산필름)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에 돌아온 것은 2018년 11월이었다. 부모님이 장기 여행을 떠나며 개 두 마리와 고양이 밥을 챙겨달라는 요청 때문이었다. 3개월간 불무장등의 단풍이 지는 모습을 홀로 바라보며 안식과 위로를 얻었다. 더 이상 취업과 내집마련을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자란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늙어 죽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내가 사는 곳은 지리산 남부능선의 끝자락 하동 형제봉 아래 ‘회강골’이라는 골짜기에 있다. 2019년 2월, 이곳에 양수발전소라는 두 개의 댐을 짓는 사업설명회 일정이 알려졌다. 계획에 따르면 우리 집은 수몰위기에 처해 있었다.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 댐 건설 반대활동을 시작했다. 다행히 하동의 유치계획은 철회되었다. 이 때 나는 하동의 화력발전소 인근 명덕마을 주민들을 처음 만나게 됐고, 고전면의 돈사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도 만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전기의 편리함과 육류소비를 누릴 수 있는 배경에는 신규 발전소 건설과정에서의 주민갈등, 발전소인근 주민들의 암 발병, 무책임한 공장식 축산업의 팽창으로 인한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곳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양수발전소 반대활동 이후 지역의 활동가들과 연결되면서 산내에 하무와 상이, 온빛, 상글을 만나고 교류하기 시작했고, 구례에서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아라도 함께 만나 이야기하며 우리가 지리산에서 어떤 삶을 기대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일본 미야자키 현의 ‘표주박시장’에 다녀오면서 우리의 기대는 구체화되었다. 표주박시장은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겐고망 가족이 중심이 되어 한 달 동안 전기와 화석연료, 일회용품 없이 살아가는 캠프이자 자급적인 전망을 내놓기 위한 시장이다. 우리는 각자 ‘표주박시장’에서 만난 친구들과 경험들에 관해 이야기 하던 중 하마터면 댐 건설로 잠길 뻔 했던 회강골 계곡에서의 ‘지리산게더링(혹은 캠프)’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지리산게더링은 2020년 6월과 7월에는 2박3일씩 공간에 필요한 것들을 만드는 준비워크샵을 진행했다. 첫 번째 워크샵에서는 계곡의 돌과 흙을 이용한 화덕을 만들고, 이 화덕으로 밥을 지어먹고 요리를 해먹기로 했다. 두 번째 워크샵은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할 퇴비간과 기존에 있던 생태화장실을 리모델링 하는 작업을 함께 했고, 세 번째 워크샵은 9월19일부터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모일까’라는 주제를 놓고 서클을 열면서 본 캠프를 시작했다. 8월 중순부터 코로나19 확진자가 급격하게 증가함에 따라 일정과 참가자들을 어떻게 조율할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그래서 9월 1일부터 10월 1일까지 진행하기로 했던 일정은 미뤄졌고, 공개적인 홍보보다는 친구를 통해 초대장을 발송하는 방식으로 참가자를 모집했다. 어떤 시기에는 20명 가까운 사람이 찾아올 때도 있었고, 어느 날에는 한명, 두 명 정도 캠프를 지키는 때도 있었다. 지리산게더링은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모임을 추구하고 정해진 규칙이나 계획이 없었다. 하지만 초청장에 안내문을 첨부해 우리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번 캠프에는 기본적으로 비건 요리를 해먹는다던지, 성별/장애/연령 등에 기반한 혐오발언을 하지 않기로 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식사당번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었다. 계곡에서는 수영을 즐기기도 하고 캠프장소의 뒷산인 형제봉에서 산악열차건설 이슈가 생기면서 산악열차반대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산에 떨어진 밤을 주워 밤조림을 해먹기도 했다. 밤마다 모닥불 앞에 모여 생태적 전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계획보다는 나의 몸과, 친구들과, 자연의 흐름 속에 한번 맡겨보는 생활이었다. 현재 지리산게더링의 고민은 크게 다섯 가지인데, 장소의 관리에 관한 문제와 먹거리를 사거나 얻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방법, 불과 전기 등의 에너지를 자립하는 것, 그리고 어떻게 하면 지리산을 기반으로 생태적인 네트워크를 만날 수 있을까, 생태적 실험의 장을 어떻게 만들어갈까에 대한 고민이다. 사실 지리산게더링의 실험은 아직 초기단계고, 고민해야 할 지점이 많지만, 해 볼만 한 실험이라고 생각하고 천천히 즐겁게 이어나가려고 한다. 사람들에게 캠프에 대해 설명할 때마다 명확하게 전달하기 어려웠다. 사람에 따라서는 지리산게더링이 ‘환경캠페인’이라거나 ‘생존캠프’라거나 ‘삼시세끼’라거나 하는 식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사실 그것보다는 자연과, 사람과, 내 몸과 조금 더 연결감을 갖고자 하는 실험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다.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한 번 와보시라’고.
    • 우리마을
    • 하동
    2021-06-01
  • 옛 사람들의 흔적이 곳곳에 서린 하동군 옥종면 문화유산 답사기
    이상윤 (사단법인 숲길 상임이사) [ 사단법인 숲길이 2019년 지리산권 5개 시⋅군 ‘백의종군로’ 걷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 가운데 하동군 옥종편은 지역주민들과 3차례에 걸쳐 지역의 문화유적지를 둘러보고 지역의 인문학 소양을 높이는 기회를 가졌다. 앞으로 지역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자리매김할 방안을 찾기로 했다. 그 일환으로 ‘지리산人’에 답사기를 싣는다. / 편집자 주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그 곳은 하동과 약간 다르다. 원래 진주목이었던 곳. 그래서일까, 지금도 옥종은 생활권으로 보면 진주가 가깝다. 행정구역으로 하동군이지만 하동읍으로 장을 보러 온다면 재를 넘어 굽이굽이 와야 한다. 황토가 유명하고 선사유적지가 있다. 아마 맨 처음 사람이 농경생활을 할 때부터 이 곳에서도 인간 문명이 태동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긴 세월을 간직한 고장답게 시대마다 걸출한 인물들이 나타났다. 지난 8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우리는 ‘옥종 문화유적지’를 탐방했다. 이순신 백의종군로 답사가 목적이지만 옥종 곳곳에 있는 선인들의 발자취를 그 곳 분들과 함께 했다. 시골살이를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하우스 농사가 많은 옥종의 특성상 제일 무더울 때야말로 잠시 쉴 때여서 지역 분들과 나눔을 하려면 이 때가 적기이다. 악양 사람, 하동읍 사람, 그리고 걷기를 위해 참여한 분들과, 옥종 향토사학자, 옥종면장, 그리고 농민회 활동을 하는 분들이 모였다. 청수역(하동군 옥종면 정수리)에서 모이다. 이 곳은 이순신장군이 백의종군을 할 때 들렀고 말에게 먹이를 주고 쉬었다는 기록이 있는 곳. 백의종군로 사업으로 정자를 짓고 역사를 소환했지만 정확한 장소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고단한 여정을 이어갔을 장군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백의종군하라는 명을 받고 길을 나서 간단치 않은 여정을 소화하고 있다. 합천에 있는 권율장군을 만나 소임을 받아야 한다. 그가 이 길을 갈 때는 없었지만 청수역 인근에는 포은 정몽주 선생을 기리는 옥산서원이 있다. 우리 일행은 옥산서원 강당에 올라 오늘의 여정을 공유하고 서로 인사를 나눈다. 이 날 우리를 안내해 주신 향토사학자 한충녕 선생은 옥종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나눠주신다. 고려 강민첨 장군, 강감찬 장군에 얽힌 이야기, 연산군의 스승이었다가 그가 왕위에 오르자 역적으로 처형된 지족당 조지서의 애환, 동학농민항쟁 최후의 결전을 위해 집결한 옥종 고성산성, 남명의 후학으로 일생을 꼿꼿한 선비로 산 겸재 하홍도. 뿐만 아니라 정몽주 선생의 손녀로 역적으로 몰려 처참하게 죽은 남편 지족당 조지서의 시신을 수습하여 고향 옥종에 모신 정씨 부인의 애절한 사연. 노인 향토사학자의 열정을 제지하지 않으면 오늘 하루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것 같아 부랴부랴 갈무리하고 답사를 시작하였다. 옥산서원의 백미는 포은집 장판각 옥산서원 옆에는 정몽주의 문집판각(文集板刻) 500여 판이 보관된 장판각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심가를 비롯, 포은 선생의 저작들이 목판으로 보관되어 있는 곳인데... 허술하기 짝이 없다. 문화재를 대하는 태도 역시 강자의 논리를 따른다. 고려의 충신이었으나 조선으로 승계되지 않은 사람 포은. 선죽교에서 이성계의 아들이 보낸 자객의 철퇴를 맞아 숨을 거둔 비운이 장판각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이 날 우리는 포은집 장판각 자체를 훌륭한 문화유산으로 만드는 일, 지역 문화 자산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는 저변을 만들자는 다짐을 했다. 지족당 조지서의 무덤, 태실 그리고 정씨부인 정려 겸재 하홍도와 모한재 남명 조식 선생이 지리산을 찾은 이유 가운데 한 사람이 지족당 조지서다. 그는 연산의 스승이었으나 그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다. 그 주검을 거둔 그의 아내 정씨는 낭군의 시신을 수습하여 선산에 묻었다. 지족당이 복권된 뒤에 그 부인에게 조정은 정려를 내렸다. 지족당은 옥종 위연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가 장원 급제를 세 번 하여 삼장원마을로 불리게 되었다. 마을 인근 산에 그의 무덤이 있고 남명 조식이 쓴 묘비가 있다. 남명은 고려 한유한, 조선의 조지서, 일두 정여창을 보기 위해 지리산을 찾았고 지리산 유람을 옥종 정려에서 마무리 한다. 산수를 보니 세상과 인간이 보인다는 갈음과 함께 그는 지리산 사람이 된다. 그만큼 그에게 이 곳 삼장 조지서와 그 부인의 지조는 깊은 울림이었다. 옥종은 남명이 기거하며 후학을 양성했던 덕산과 강을 사이에 둔 까닭에 그의 문하에 들거나 교류하기가 자연스러웠다. 남명의 제자 가운데 선생과 같이 살고자 한 사람이 겸재 하홍도. 옥종 안계에는 그를 그리는 사당 모한재가 있다. 이 곳은 겸재 하홍도가 학문을 갈고 닦으며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며, 미수 허목을 비롯한 당대의 유학자들과 교류하던 곳이기도 하다. 겸재 하홍도는 벼슬을 단념하고 재야에서 공부하며 실천하였던 당대의 대표적인 유학자 중 한 사람이며, 특히 예학에 밝았던 인물이다. 모한재에는 하홍도의 위패가 있는데, 위패는 원래 종천서원(宗川書院)에 있었으나,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서원이 훼철되면서 모한재로 옮겨 오게 되었다. 모한재 강당 마루에는 옛 종천서원의 현판 등도 보관되어 있다. 덕천강에 자리 잡은 강정, 흥룡리 이홍훈가 백의종군, 이순신의 마음 다잡기 백의종군에 나선 이순신은 하동지역을 오고 간다. 한 번은 합천에 있는 도원수 권율을 만나러 가는 길, 또 한 번은 수군통제사 재임 이후 구례⋅여수로 가는 길에. 합천 가는 길, 옥종 청수역에 들러 말먹이를 주고 쉬었다고 한다. 합천에서 권율을 만나 조선군의 패배 소식을 접하고 전황을 살피기 위해 남해를 두루 다닌다. 조경래가에 머물다 재수임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조경래가와 강정은 덕천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 조경래가 앞 들판에서 병졸을 모으고 훈련시키고, 전선을 가다듬는 전략회의를 했다는 강정. 지금은 하우스 단지로 바뀌고 기념탑만이 그날을 추억하고 있다. 재수임 이후 장군은 행장을 꾸려 남해안 곳곳을 다니며 전황을 분석한다. 그리고 하동을 지나 구례, 순천, 여수 지역을 돌며 삼군 수군을 재건한다. 백의종군 때 머물렀던 흥룡리 이홍훈가는 복원을 해 놓았다. 백의종군을 거친 이순신은 재수임 이후 조선수군을 재건하여 명랑해전으로 대승을 거둔다. 고성산성과 동학기념탑 결사항전과 최후 집결지 1894년 전라도에서 농민군의 봉기가 시작되자, 같은 해 7월 하동을 비롯한 서부 경남 농민들도 봉기에 나서 한때 진주성을 함락시키기도 했다. 일본군의 반격으로 물러나 이 곳 고성산성을 중심으로 항거했다. 10월 14일에 5천여 명으로 구성된 농민군은 이 곳으로 출병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지만 결국 패하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농민군 186명이 전사했다. 1895년 동학농민전쟁 당시 서부경남의 동학농민군과 일본군의 전투현장인 ‘고성산성’(하동군 옥종면)과 ‘동학혁명군 추모탑’은 최후의 민중항거를 기리기 위해 옥종 사람들이 건립하여 해마다 그들의 영혼을 기린다. 고성산성은 언제 축조되었는지 모르지만 산성이 자연스럽다. 요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남북관계, 한일관계, 북미관계는 물론 남남갈등이 예사롭지 않다. 하동군 옥종면 여기저기 남겨진 문화유적지는 우리나라의 고단한 역정이 물씬 묻어있다.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자유로운 삶이 있을까? 옥종 문화유적지를 둘러보는 동안 우리는 이순신이 지키고자 했던 것, 정몽주와 조지서 등 이 땅의 선비들이 완성하고자 한 인간정신, 그리고 항쟁의 깃발아래 모인 동학 민중이 꿈꾼 세상은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 우리마을
    • 하동
    2021-06-01
  • 남원 작은변화포럼
    남원 작은변화포럼 김양오 (작은변화포럼 대표) 이름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무슨 회의 이름이나 행사이름 같으니. 그래도 우린 우리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왜냐하면 하나의 독립된 단체가 아니고 확고한 결사체도 아니며, 그야말로 ‘느슨한 연대’로 한 달에 한번 주제 토론 비슷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기 때문이다. 남원에 작은 변화를 천천히 은근히 오랫동안 만들어 내자는 뜻에 합의한 여러 단체가 달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벌써 4년째다. 그럼 4년동안 뭘 했을까? 처음에 2년 동안은 회원 단체를 만들어 나가는 데 집중했다. 15개에서 20개 사이의 단체가 들어왔고 혹은 나갔다. 1년 이상 남원에서 활동한 건강한 시민단체라면 어떤 단체든 다 들어올 수 있으니 정말 다양한 성격의 단체가 모였다. 마을모임, 교사 모임, 교육공동체, 농민회. 청년 단체를 비롯해 공무원 노조와 의료원 노조까지 들어와 있다. 정말 이렇게 다양한 단체가 한 자리에 모여서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의아스럽기도 했다. 특히 공무원은 우리의 공격 대상이 될 확률이 높은데 한 자리에서 회의를 하고 있으니 신기하기도 하다. 1년동안 저녁밥을 함께 먹으면서 친해지는 시기가 지나자 드디어 이제 우리도 뭔가를 해 보자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뭘 하지? 다들 답답해 하는 게 의정이었다. 의원들이 뭘 하는 지 어떻게 하는 지 직접 보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래서 꾸렸다. 의정모니터링단. 회원 한 분이 단장을 맡고 모니터링단을 꾸려 1년동안 의회 회기 기간에 방청을 꾸준히 진행했다. 회의가 다 평일 낮 시간에 이루어져 직장인들이 참여하기가 힘들고 시간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 단장님과 몇 분이 거의 희생에 가까운 노력으로 모니터링을 꾸준히 해 나갔다. 그 덕분에 의원들은 작은변화포럼의 존재를 확실히 알았고 회의에 참여하는 태도도 많이 개선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하지만 전문 지식도 부족하고 사안에 대한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회의만 참관하는 것은 많은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더 많은 공부 특히 예산에 대한 공부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거기까지 품을 낼만한 회원들이 없었다. 우린 모두 바쁜 사람들이니. 또 하나 작은변화포럼이 세간의 집중을 받은 활동이 있었다. 작년 국회의원 선거 기간에 후보들을 초청해 토론회를 진행했고 그것을 유튜브로 방송했다. 코로나19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선거운동을 하기가 무척 힘들어진 후보들에게 시민단체에서 주최하는 토론회는 꽤 반가운 일이었다. 회원들은 후보들에게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 깊이 토론하고 질문을 만들어 보냈다. 방송 며칠 전에 후보 캠프의 담당자들과 현장에서 방송 진행에 대한 실무 회의도 했다. 촬영팀은 남원 청년들이 만든 회사로 정했고 사전에 장소, 동선, 소품, 배경, 의상까지 신경쓰며 진짜 전문 방송국처럼 준비했다. 그리고 이틀에 걸쳐 촬영, 며칠 동안 편집, 또 며칠 동안 자막 써넣기, 유튜브 송출, 홍보, 조회수 올리기까지 정말 간단하게 시작한 일이었는데 말도 못하게 일이 많았고 시간도 매우 많이 걸렸다. 당시 대표였던 유지선회원은 토론 내용을 모두 자막 처리하느라 며칠동안 날을 샜다. 이렇게 힘든 일인 줄 알았으면 아무도 하자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이 증명되는 사건이었다. 2020년은 정말 다사다난했던 해다. 특히 남원은 더 그랬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나도 없었는데 대구 확진자들이 대거 남원의료원에 입원하면서 회원 단체들이 큰 활약을 했고 여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큰 수해가 나서 시민단체들이 역량을 총동원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뒤였다. 비는 그쳤으나 몇 달이 지나도록 피해 보상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뿐이 아니다. 남원으로 귀농한 청년들은 큰 사기를 당해 억울하다며 유튜브를 통해 남원시청을 공격했고 급기야 남원 불매운동까지 벌였다. 남원시는 여기저기 개발한다며 산을 깎고 아름드리 나무를 무참히 베어냈다. 또 남원시와 의회는 반대 의견은 한번도 듣지 않은 채 지리산에 산악열차를 놔야 남원이 잘 살고 지리산이 산다고 신념에 차서 일을 추진했고, 춘향 영정문제, 태양광 문제를 비롯해 너무나 많은 문제로 남원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2021년 지금도 그렇다. 사람들이 작은변화포럼에게 뭔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너네 뭐 좀 해야 하는 거 아냐? 남원이 요 모양 요 꼴인데 뭐라고 목소리 좀 내야 하는 거 아냐? 나도 그러고 싶다. 그러나 작은변화포럼은 너무나 다양한 단체가 모여 있다. 대략 스무 개의 단체장들이 같은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현안에 대한 인식 차이도 크고 문제의식의 깊이도 너무나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현안마다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건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회의 때마다 이런 것을 다 논의하다가는 밤을 새도 모자란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1년동안 함께 하기로 한 것에 대해서 조금씩이라도 우직하게 함께 가기로 하고 나머지 현안에 대해서는 그 문제에 심각성을 느낀 단체들이 모여서 성명서를 내든 뭘 하든 하기로 했다. 한 단체든 두 단체든 그렇게 하는 게 서로 부담이 없다는 판단이다. 그동안 남원에 이런 시민단체 연합 조직이 여러 번 결성됐다 없어졌다고 한다. 1년을 넘긴 적이 없다는 얘기도 있다. 그렇다면 작은변화포럼은 남원에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당장 행동하지 않아서 답답해 하는 회원들도 있지만 한번도 1년을 넘기지 못했다는, 그 어렵다는 연대 활동을 이렇게 오래 하고 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멀리 볼 일이다. 연합조직은 각 단체 회원들을 긴밀히 연결하고 새로운 활동의 플랫폼을 만들어 시민 활동의 진보를 위해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래서 ‘지역이 필요로 하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 조직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눈 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표 지향성 조직이 아니라 그야말로 ‘지역이 필요로 하는 조직’으로 커나가야 한다. 올 해 작은변화포럼은 ‘내가 살고 싶은 남원, 내가 바라는 남원’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마당을 꾸려나가기로 했다. 5-6명 정도의 구성원들이 5회 이상 만나서 같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냥 바라는 것을 툭 던져놓고 마는 것이 아니라 회를 거듭할수록 세밀하게 토론을 진행해서 나중에는 정책으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끌어나가 보자는 구상이다. 필요하면 해당 전문가를 초빙해서 조언을 들어볼 수도 있다. 이렇게 이야기 나누는 팀 20개를 조직해 ‘살고 싶은 남원’에 대해 꿈을 꾸고 구체화시켜 정책으로 만들어서 내년 선거 때 후보들에게 제시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좋은 정책이 많이 나오면 연말 작은변화포럼의 날 때 정책 박람회를 열어도 좋겠다. 좋은 꿈은 꿀수록 행복하다. 마구마구 꿈을 꿔보자. 작은변화포럼, 신박하지만 쌈박하지는 않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지금은 이 모습이 최선인 것을. 지역이 필요로 하는 조직으로 잘 성장해 나가길 바랄 뿐이다.
    • 우리마을
    • 남원
    2021-06-01
비밀번호 :